• 펴낸 책

  •  
    작성일 : 2007-03-01 15:03
    이오덕 교육일기②/한길사/1989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1,629  
    이오덕 교육일기②/한길사/1989
    차례
      제①부
    1. 우리 아버지 리야카 끌고 가네요
      제②부
    1. 다시 앉게 된 교감의 자리
    2. 선생님, 몇 번 씁니까
    3. 보결수업과 공문서 보고에 쫓긴 나날
      제③부
    1. 스승의 길, 관리의 길
    2. 달구지꾼은 소에게 술을 먹이고
    3. 말이 없는 아이들
      제④부
    1. 교감 선생님, 아주 노가다가 되셨네요
    2. 장학방침 외어 보시오
    3. 불행한 아이들, 불행한 겨레

    2. 달구지꾼은 소에게 술을 먹이고

    9월 16일 목요일

     교장은 읍에 갔다.
     온종일 꼼짝도 않고 책상에 엎드려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것만은 틀림없다.
     무슨 장부를 만든 것이 생각난다. 잡종금 계산한 것이 생각난다. 공문 보고서 쓴 것이 생각난다….
     7․8년 전 청리학교 이철하 교감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온종일 교감 자리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쓰고 계산하고 서류를 만지고 있는 모습… 저 사람이 대체 무엇을 저렇게 하고 있나? 교감이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참 할 일 없이 서류만 뒤적이는 것 같고, 어찌 보면 불쌍하기고 하고… 그렇게 그때는 생각했더니, 지금의 내 모습이 꼭 그때의 이 교감 모습 그대로가 아니고 무엇인가!
     저녁 6시쯤에 내가 한 것은 똑똑히 생각난다. 교과서 대금 처리한 것―지난 6월과 7월에 한 것이 아직도 장부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내일 모레면 사무감사라는데 계원 선생은 천하태평이다. 그뿐 아니라, 경리 서류도 안 되어 있다. 급한 보고서류가 많은데 그것도 모두 그대로 버려 두었다. 운동회 연습도 연습이지만, 고전 읽기 경시대회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내일쯤 장학사가 올 것 같은데, 오면 당장 교실에 들어가 시험을 쳐 볼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 학력은 말이 아니다. 출근카드 정리조차 안 되어 있다. 학교일지도 한 달 전부터 안 쓰고 있다….
     우선 교과서 계원을 불렀다. 5시경이다.
     “김 선생님, 선생님이 메모해 둔 것을 보고 여기 수입결의서와 지출결의서는 다 만들어 놨습니다. 방학책값 받은 것도 다 정리해 놨어요. 그러니 교과서 대금 각 반에서 징수한 것을 두 차례 나눠서 (대금 납부를 두 번 나눠 했으니까) 이 금액에 맞도록 다시 계산해서 맞춰 써 오세요. 내가 계산해 보니까 돈이 틀려요. 잠시 하면 되니까 곧 하세요. 지금 다른 일은 없습니까?”
     다른 일 없는가 물은 것은 운동회 연습이 있지는 않은가 해서이다.
     “다른 일은 없습니다.”
     “그럼 지금 곧 해요. 퇴근 전에 해서 가져와야 합니다.”
     “예.”
     그런데, 6시가 지나도 소식이 없다. 다른 선생들은 다 사무실에 보이는데 김 선생이 없다. 물론 교실에 가서 계산하고 있겠지 했는데, 점점 어두워 모두 돌아가도 안 보인다. 현옥이한테,
     “김 선생님, 교실에 계시는가 가 보아라.”
    했더니
     “아까 집에 갔어요.”
    한다. 화가 났다. 어디 이런 사람이 있는가? 대강 이런 사람인 줄 알기는 하지만 이건 참 나를 조롱하는 것 아닌가? 제 사무를 내가 다 해준 셈인데 이런 태도니!
     “현옥아, 당장 가서 김 선생 불러 오너라.”
     이래서 어둑어둑할 때 김 선생이 왔다. 정작 불러 놓고 보니 화가 좀 풀렸다.
     “대체 어찌되었어요?”
     “다 해 놨습니다.”
     “다 됐으면 왜 가져오지 않아요?”
     “교실에 있어요.”
     가져오게 했더니, 수입결의서는 쓰지도 않고, 그 전에 쓰던 메모 종이에 그대로 적어 놓았는데 계산도 안 맞는다.
     “오늘 밤에 다시 맞추어 놓으세요. 옮겨 쓰는 것은 내가 할 테니까.”
     “그리고, 내일은 낙수수집한 것도 장부를 정리해야 하는데, 일을 이렇게 자꾸 늦춰서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김 선생은 여전히 태평스런 표정이다. 참 팔자 좋은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아니고는 이놈의 국민학교 교원 노릇도 못 해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p.164~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