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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6-08-26 22:00
    아동문학 평론집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백산서당/1984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1,738  
    아동문학 평론집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백산서당/1984
    차례
    머리말

    전래동화, 그 전통 계승 문제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아동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아동문학의 빈곤
    판타지와 리얼리티
    창작동화의 문제점
    표절동화론
    아동도서․아동문학․아동교육

    죽음을 이겨낸 동심의 문학
     - 이원수 선생의 말년의 동시에 대하여
    역사를 살아가는 동심
    동신의 나라와 자전적 소설
     - 이원수 문학전집 제 2권 ‘숲속나라․오월의 노래’의 해설

    독을 풀어주는 문학
     - 합동작품집 ‘황소 아저씨’에 대하여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의 글쓰기에 대하여
     - 서정술 시집 ⌜어느 불행한 탄생의 노래⌟와 김기식 일기 ⌜잔디처럼 민들레처럼⌟을 중심으로
    농촌 어린이에 대한 사랑
     - 박 상규 동화집 ⌜고향을 지키는 사람⌟에 대하여
    소박한 삶과 따스한 인정
     - 권정생 동화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에 대하여
    소설가들이 쓴 동화
     - ⌜쟁이만이 사는 동네⌟에 대하여
    나귀는 왜 여행을 하였나?
     - 앤 롤랑 클라크 ⌜내귀의 여행⌟에 대하여
    인간 소외 현상을 보는 눈
     - 미카엘 엔데 ⌜모모⌟에 대하여
    어린이의 마음을 지녔던 마지막 사람
     -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읽고
    이 현실을 알아야 한다.
     -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을 읽고
    머리말
     지금 이 땅의 아이들은 병들어 가고 있다. 비닐 하우스 속에서 속성재배되고 있는 식물처럼 병든 어른으로 급조되어 가고 있다. 인형으로 되었다가, 기계의 부속처럼 되었다가, 돈과 권력만을 으뜸으로 알고 허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비참한 동물로 되어 가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사람의 아이로 살아나게 해야 한다.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을 가진 겨레의 아이들로 키워야 한다. 아이들을 구하는 일보다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장 가능한 방법은 아동문학을 통한 교육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 아동문학은 그 책임이 막중하고 그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동문학인들은 이 땅의 아이들의 운명에 아랑곳없이, 아동문학을 작가 자신의 위안물로 삼고 있고, 그런 개인의 오락적 행위를 아동문학인의 본연의 자세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주어야 한 문학이 도리어 아이들을 해치고 아이들에게 독소를 퍼뜨리는 노릇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일반 교육자와 부모들은 아동문학을 특수한 전문가들이나 관심할 것쯤으로 알고 있다. 아이들이 읽고 있는 온갖 신문 잡지며 책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무관심이다. 다만 겉모양이 울긋불긋 요란스럽게 꾸며져 있기만 하면 잘 된 것으로 안다.
     몰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모두가 자기만 편안하고자 하는 비극적 상황 속에 갇혀 살기 때문이다.
     교육자고 문학자고 장사꾼으로 되어 버린 세상, 이러다가 우리 겨레의 앞날이 어찌될지, 실로 한심스럽다.
     <시정신과 유희정신> 이후 두 번째로 내는 이 평론집에 수록된 글들은 거의 모두 미발표의 것이다. 그 동안 아동문학을 논하는 글을 어느 신문 잡지에서도 한번 청탁받은 일이 없다. 대관절 일반 문예지에서 아동문학 평론이 실린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쓸 사람도 없겠지만, 쓸 자리와 기회가 없으니 더욱 못 쓸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더러 서툴더라도 독자 여러분은 부디 이런 사정에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다만 잘못된 곳을 서슴없이 지적해 주었으면 좋겠고, 앞으로 더욱 값진 논의들이 활발하게 전개됨으로써 하루빨리 이 침체된 장사꾼들의 세상이 가시어, 살아 숨 쉬는 생명이 충만한 세상으로 바꿔지기를 고대한다. 아이들을 등진 오락의 문학은 비평이 없이 제멋대로 씌어지겠지만, 생명을 지키는 문학은 비평이 없이 창조될 수 없는 것이다.
                                                            1984년 10월 이오덕
    농촌 어린이에 대한 사랑
     -박상류 동화집 ⌜고향을 지키는 사람⌟에 대하여
     박상규 씨는 동화로서 어린이들의 삶의 문제를 풀어 보려고 한다. 그는 황량한 현실 속에 내던져진 어린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건성으로 적당히 보아 넘기지도 않는다. 어린이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동심이란 것을 상상의 세계에서 미화하는 글재주꾼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작가다. 이 땅의 어린이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마음 속 깊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고,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혹은 기뻐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지혜로운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재미있는 얘기를 엮는 것이다. 여기서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할 어린이의 문제는 그대로 동화의 창작으로 해결해야 할 문학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교육자인 이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어린이들에게 참된 지혜와 올바른 인식의 세계를 열어 보이려고 하고, 좋은 습관을 들이고 착하고 용감한 행동을 몸에 붙여 주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린이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염원은 어린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그들이 슬기롭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부모와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염원과 완전히 합치한다. 그것은 아동문학을 창조하는 작가들이 그들의 문학이 설 기본적인 바탕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인간적인 태도인 것이다. 이 작가의 동화에서는 이러한 참된 교육적 의도가 결코 생경한 교훈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독자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읽는 가운데 감동을 받아들이도록, 즉 훌륭한 문학으로 승화되어 있다.
     아동문학은 교훈-물론 좀 넓은 의미에서의 교훈-을 지녀야 하는 문학이다. 어린이들에게 진실을 보여 주지 못하는 동화, 지혜로운 삶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소설, 어른들의 오락에 지나지 않는 동시를 아동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박상규 씨야 말로 그 수가 많이 못한 우리 아동문학의 고전적 작가들의 뒤를 가장 전당하게 계승하는 작가라 할 것이다.
     현실과 어린이의 문제를 문학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이 작가의 거의 무돈 작품에서 진하게 풍겨 나오는 것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다. 이 인간적 애정은 그 어떤 관념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값싸게 우러난 동정은 물론 아니다. 그 자신이 생리적으로 지니고 있는 듯한 이 감정은, 또한 그 예전부터 항상 일하면서 가난하게 살아온 이 땅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그들의 몸속에 지녀 온 그것이다. 박상규 동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면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 아이이거나 눈먼 소년, 정신박약아, 부모 없는 아이 등, 고난과 고통을 받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불행한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 들어가 그들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고 암흑을 헤치면서 빛을 찾으려고 하는 작가의 몸부림을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가의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크게 주목되는 것은 농촌과 농촌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뜨거운 의지다. 우리 문화의 뿌리가 농촌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급격한 산업 구조의 변동으로 말미암아 도시로부터 밀려든 물질문명은 농촌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과 생활을 부끄러워하게 하고 열등시하고 천시하도록 하였다. 돈과 권력만을 지상의 것으로 숭배하는 풍조가 모든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세상, 우리 문화가 뿌리째 뽑혀 버릴 위기에 놓여 있는 이러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아프게 직시하고 있는 이 작가는, 사라져 가는 흙의 문화를 시멘트 바닥에서 되살리기 위해, 기계의 부속품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인간의 얘기를 들려주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름다운 농촌의 자연과 인정과 생활습관-그것은 결코 지나치게 미화된 것도 아니고, 귀족적인 소비생활을 즐기는 이들의 취향을 위한 것도 아닌 것-을 감동적인 얘기로 들려주고, 그러한 아름다운 자연과 인정과 생활이, 불순하고 저질적인 도시로부터 밀어닥치는 물질적인 힘에 짓밟히고 침해당하고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그리하여 순결한 정신의 소유자인 어린이들이 불순한 외래적인 것에 맞서서 저들의 귀한 것을 지켜 가주기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작품에서 도시적인 것과 농촌적인 것이 대립되어 있는데, 앞의 것이 외래적인 불순한 것으로 되고 물질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반해 뒤의 것은 우리들 자신이 가졌던 것으로 정신적이며 인간적인 것으로 나타나 잘 대비되어 있다. 농촌에서 우리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순박함과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은 도시 문명을 비판함이 없이 효과적으로 이뤄 갈 수 없는 사실을 이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오늘날 도시의 편리한 생활에 젖어 있으면서 농촌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거의 모두 농촌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줄 모르고, 농촌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문제들은 걸러 내어 버린 채 다만 농촌을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완상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생활은 도시의 소비성과 오락성에 중독되어 있으면서 마음은 있지도 않은 그 옛날의 목가적 세계를 농촌에서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농촌을 관광의 대상쯤으로 알고 도시에 부속되어 있는 부분으로 보고 있는 이런 태도는, 퇴폐성과 부도덕성을 필수로 지닐 수밖에 없는 비인간적 태도라 하겠다. 놀랍게도 문학 작가들조차 그 대부분이 농촌을 목가적인 낙원으로 상상사하는 것이 아니면 도저히 인간이 가서 살 수 없는 궁핍한 곳으로, 못난 찌꺼기들이나 남아서 살고 있는 곳으로 알고 있다. 특히 아동문학에서는 이러한 천박한 물질문명의 찬양과 숭배가 농촌 어린이들에게 열등감을 주입시키는 무서운 결과로 나타나, 아동문학이 가져오는 역기들의 해독이 크다는 것을 통감하게 한다. 제발 어린이들이 읽지 말아 주었으면 싶은 동화나 동시가 너무나 많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화와 소설로 농촌 어린이들에게 진실을 일깨워 주려고 하는 박상규 씨의 문학적 업적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동화의 소재와 문장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하고 싶다. 박상규 씨의 동화의 소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것은 언제 누구든지 보고 듣고 겪는 일들이다. 우리의 주변에서 수시로 되풀이되고 있는 일들을 단순한 말씨로 얘기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꽉 짜여진 재미있는 얘기로 되고, 마지막에는 감동적인 결말에 이른다. 교육자인 그는 교단에서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동화의 소재로 삼는 일이 많은데, 이 경우에도 교직자이면 누구나 나날이 겪고 있는 범상의 일들이 그의 붓끝에서는 신선한 얘기로 창조되고 있다.
     이 작가의 문장은 조금도 허식이 없고 말에 낭비가 없다. 어디까지나 산문 문장의 본길을 걷고 있으며, 오늘날 허식적인 문체를 즐겨 유행처럼 모방하는 많은 작가들 가운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존재라 할 수 있다. 문장이 소박하고 명료한 것은 작품을 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문학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참된 작가 정신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은 어린이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 역사와 사회에 대한 믿음이 저절로 나타난 결과다. 농촌의 자연과 농촌생활의 리얼한 표현, 교당생활의 한 토막을 눈물겹게, 혹은 흐뭇하게, 때로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도록 그려 보이고 있는 것도, 그가 손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지 않고 실로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감동하며 읽은 것과 같이 박상규 씨의 동화와 소설이 앞으로 우리 어린이들에게 길이 애독될 것을 확신한다. 그리하여 이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는 모든 어린이들이 순결한 인간의 세계를 자각하여 그것을 지키고 가꾸는 지혜로운 삶을 몸에 붙이게 될 것을 바란다. 문학에 실망한 많은 어린이들이 진정한 문학의 세계를 여기서 만나게 된다면, 그들의 정신이 가뭄 끝에 내린 비를 만난 산천의 초목같이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대하게 되어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썼지만, 불충분한 해설이 된 것 같아 저자에게나 독자들에게 미안스럽다.
                                                            (p.249~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