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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4-04-24 14:12
    글쓰기 교육의 역사 2 (이오덕)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823  
    글쓰기 교육의 역사  2

       두번째 뽑힌 글

                                  이오덕
        
      그 다음 달 치인 1924년 6월호에는 '뽑힌 글' 세 편이 실려 있다. 그 세 편을 옮겨 본다. 

      저녁때
                      김화군 근남면 사곡리 1247 엄삼료
      산봉우리는 석양을 받아 더욱 뾰죽하고 넓은 들은 회색이 흩어져서 더욱 아득한데, 종일토록 노래하고 춤추던 새와 나비는 피곤함을 못 이기는 듯이 느릿느릿 저편 그늘 속으로 날아간다. 개울 건너편 산 밑으로서 대래키 찬 소녀 3.4인이 활개를 치며 바쁜 듯이 돌아오는 것은 아마 나물 캐러 갔던 아해들인가 싶고 아침부터 농사 하노라고 들에 널린 농부들도 하나씩 둘씩 이리 저리로 흩어져 돌아간다. 뽀얀 저문 빛이 서편  산 밑에서부터 차츰차츰 기어나와서 넓은 들을 휩싸 가더니 어느 틈에 저 건너 마을도 그 속으로 싸여 들어가고 말았다. 벌써 소녀들이 저녁을 먹은 후인가 호들기 부는 소리가 처량하게도 느리게 어두운 들로 흘러 나려간다. 
      아아, 조고만 촌의 하로 봄날이 오날도 평화롭게 저물었다.
      (선자) 퍽 고요하게 씨웠습니다. 촌락의 묘경이 눈에 뵈는 것 같습니다.

      가련한 소녀
                                  경성 누상동 김천득
      세상에 가련스런 일이 많아도 엄마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할머니 손에 쓸쓸히 자라는 어린 아해처럼 가련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 집 울타리 넘엇집에 학실이라는 여덟 살 먹은 소녀가 젖 먹을 때 부모가 다 돌아가서 이때까지 엄마 아빠를 모르고 쓸쓸스럽게 자라는 아해라. 아버지 무릎에 어머님 품에 따뜻이 따뜻이 길리울 어린 몸이 엄마 아빠를 불러 보지도 못하고 자라가는 것이 얼마는 슯고 애닯은 일이랴, 실로 눈물 나는 일이다.
        밤에 우는 물새의 슬픈 신세는
        엄마를 찾으려고 바다를 건너 
        달빛 밝은 나라에 헤메 다니며 
        엄마 엄마 부르는 작은 갈매기
      이 노래는 내가 어린이 잡지에서 읽고 잊혀지지 않는 좋은 노래다.
      그런데 앞집 학실이가 학교에서 배운 창가라 하면서 요사이 이 노래를 부르기 사작하였다. 그리고 채 외이지 못하는 까닭인지 첫 줄과 맨 끝 줄만 잊지 않고 자꼬 부르며 다닌다. 
         밤에 우는 물새의 슬픈 신세는
         엄마 엄마 부르는 작은 갈매기
      무심하게 부르는 소리언마는 내 눈에는 그 가련한 소녀가 기쁜 마음으로만 부르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 못 견디겠다. 늙은 할머니와 어린 소녀뿐만의 쓸쓸한 마당에 저녁해가 저물 때, 그 가여운 소리로 엄마 엄마 하고 부를 때에 나는 내 가슴이 흔들리고 눈물이 고이는 것을 금치 못한다.
      (선자) 언뜻 느낀 느낌을 저윽이 잘 써 놓았소이다. 부드러운 마음 묘한 솜씨외다.

      봄과 겨울
                              경성 숭 4동 171 이창운
      봄이라 하면 누구든지 모두 다 좋아하지만 실상은 겨울만 못한 때입니다. 겨울에는 추운 바람이 몹시 불기는 하지만 그래도 눈이 오시면 나무라는 나무에는 좋은 가지 나쁜 가지 가리지 않고 눈이 부시게 흰 꽃이 한결같이 피건마는 봄이 오면 늙은 나무 마른 가지에는 꽃 하나 싹 하나 피지 아니하여 늙은 나무를 울게 합니다. 우리 집 울타리에 우뚝 섰는 나무도 꽃이 피지를 않아서 요새는 날마다 울고 있어요. 뒷마당에 있는 대나무도 지난 겨울 온 겨울을 추위와 싸우기에 오는 봄에는 꽃이나 필까 했더니 꽃이라고는 한 송이도 피지 않고… 남의 집 나무에는 모두 꽃이 피었는데 남부끄럽게 구지레하게 서 있습니다. 남같이 꽃이 피지 않아서 슯다고 나에게 하소연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했던지 봄이라는 때는 겨울과 같이 고르지 못한 때인 줄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어 좋다고 기뻐하는 나무도 많은 대신에 슯다고 우는 나무도 많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자) 어린이의 글 같기도 하고 어른의 글 같기도 합니다. 본 것 느낀 것은 어린이 아니고는 못할 만큼 순결한데 글 꾸민 것은 어른 같습니다.
      
      이 6월호에는 '작품모집'이라 하여 다음과 같은 광고문이 실려 있다. 이 광고문이 1월호까지 나왔던 광고문과 다른 것은, 그림을 자유화라 해서 따로 광고했던 것을 2월호부터는 한 자리에 같이 넣어 광고한 것이다. 24년 2·3·5월호에도 이와 비슷한 광고가 나왔지만, 이 6월호부터 광고문이 이렇게 아주 확정되어 나갔다. 이 광고문은 달마다 나간 것이 아니고 가끔 나가다가 나중에는 광고가 거의 없었지만 작품은 그대로 응모해 왔던 모양이다.

              作品募集
      作文, 自由畵, 日記文, 童話, 童謠, 편지글
      以上 무엇이든지 많이 보내 주십시오.
      잘된 것은 뽑아서 冊에 내어 드리고 
      어여쁘디 어여쁜 메달賞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학교에서 지은 것이나 새로 지은 것이나 많이 보내서 메달賞을 가슴에 차고 다니십시오.
       童謠  1行 19字 1백 50行以內
       童謠  自由
       作文, 편지  1行 19字 30行以上
       自由畵  用紙 自由 但 普通 鉛筆不可
      어떤 것이든 뒷장에 住所氏名을 일일이 쓰시오. 讀者證을 안 붙이면 無效입니다. 잊지 마시오.
      
      동화는 1월호에서 길이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2월호에는 30줄 이상이라 했고, (3·5월호에서는 길이를 적지 않았다.) 6월호부터는 아주 이렇게 150줄 이내라고 정한 것이다. 150줄이면 지금의 원고지 15장이겠지. 

    <글쓰기> 2호 (1995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