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등지도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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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4-05-26 14:05
    고등학생 글쓰기 지도 2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5,797  
    마음을 열고 믿음을 쌓기 위하여

    이상석


    -- 앞으로 [고등학생 글쓰기 지도] 꼭지에 쓰는 글은 첫회분과 달리 지난 달에 직접 실천한 지도 내용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쓰겠다. 지도할 것을 계획하는 것으로 쓰자니까 막연할 뿐만 아니라 실제 지도한 것을 반성해 보거나, 비판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한 일을 다시 쓴다. --

      첫째 시간(3월 2일)
    마음을 여는 인사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이름 뒤에는 [씨(氏)] 자를 붙이고 깎듯이 높임말을 썼다. 모두에게 눈을 맞추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 소개.
    내 이름만 얘기하고 나서
    "자기를 소개할 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집안 얘길 할 수도 있고, 살아온 내력을 얘기할 수도 있고, 자기 성격이나 특기·취미들을 얘기할 수도 있고…. 여러분은 나의 어떤 부분을 알고 싶습니까. 질문을 하시면 성실히 말씀드리는 걸로 내 소개를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잠시 주저하다가 한 두 아이가 말문을 열면 이런저런 질문을 잇달아 한다. 내가 글쓰기 수업을 하는 세 학급 모두 똑같은 질문은 "복직을 하셨다는데, 왜 해직이 되셨느냐." "전교조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것이다. 정작 복직 첫 해였던 지난 해에는 이런 것을 묻지 않았는데 올해 아이들은 관심이 많다. 아마, 교지에 실었던 내 글 때문인 듯하다. (교지에 해직 전의 학생들과 지금 학생들을 보고 느낀 점을 견주어 본 글을 실었다.) 
    간단하게 내 교육관을 밝히고 해직·복직 얘길 해준다.
    "선생님은 왜 우리를 누구누구 '씨'라고 합니까. 존대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으로도 계속 존대말을 써 줄 겁니까?"
    "아니요. 처음이니까 한번 이래 보는 거죠, 뭐."
    무슨 거창한 답을 기대하던 아이들은 와르르 웃는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정색을 하고 얘길한다.
    "여러분께 높임말을 쓰는 건 내가 여러분을 진실로 존중하겠다는 내 마음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는 귀하고 중하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그것도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여러분은 이 세상에 귀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고, 주눅들어 하고, 또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은 제각기 자기의 방식대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존엄한 주체들입니다. 나는 이 글쓰기 시간에 여러분과 똑 같은 자리에서 여러분한테 배우고 또 가르치고 싶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존중받아야 하는 귀한 존재란 걸 알아주십시오. 내가 말을 높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요, 또 우리가 정이 들면 말을 높이나 낮추나 그런 것 관계없겠지요. 그때쯤에는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하지요. 그런데 …내가 이래 높임말 쓰니까 싫습니까?"
    아이들은 일제히 고함을 친다. 
    "아니요. 너무 좋아 얼떨떨해 그럽니다."
    아이들은 국민학교 때 오히려 존중을 좀 받다가 중고등학교 올라올수록 인격을 뺏겨 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남학교에서는 더 심하다. 남자란 이름으로 사나이란 이름으로 거칠게 다루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억눌림을 당해 오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으로 변해 가서, 자기가 얼마나 귀한 존재란 걸 잊어버린다. 이런 아이들에게 자기 삶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어찌 바라는가. 예나 지금이나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기만 꺾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러분을 귀하게 받드는 마음으로 수업을 하고, 또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첫 시간은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새겨 두고 끝내었다.

      둘째 시간(3월 9일)
    글쓰기에 대한 설명

    ·삶·말·글의 관계 이야기
    ·글쓰기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대학 논술고사마저 외워 쓸 수밖에 없는 글쓰기 교육 현실 이야기
    ·자기 삶을 바탕하지 않고 관념으로 된 간접 경험(독서, 예문 읽기 따위)만으로는 자기 주장을 자기 목소리로 펼 수 있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
    ·결국, 글을 잘 쓰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귀중하다는 이야기
    이런 것을 죽 얘기로 풀었다.
    둘째 시간은 아이들이 갖고 있을 잘못된 글쓰기 관념을 깨뜨리는 시간이다. 내가 위에 얘기한 내용들은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보리)]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 [글쓰기 교육 회보 모음(글쓰기 교육 연구회)] 같은 책을 보고 나름대로 정리하여 들려주었다. 물론 얘기가 지루하지 않도록 실제 생활 얘기를 보기로 얘기를 푸는 것이 좋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글쓰기 강좌에서 1시간 가량 얘기하는 수준이라도 다 알아듣는다. 
    둘째 시간에도 빠뜨리지 않고 덧붙인 얘기는 서로 믿고 마음을 열자는 것. 나도 여러분께 온 마음을 열겠다는 말이었다. 이것이 어찌 말만으로 열려지겠는가마는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셋째 시간(3월 16일)
    자기가 가장 관심 갖고 있는 일에 대해 쓰기

    이 시간 수업 내용은 창간호 13~15쪽에 이미 실어 둔 얘기 그대로 했다. 이십 분 가량 글쓰는 요령과 보기글을 들려주고 글쓰기로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너무나 진지하고 열심히 글을 쓰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어 시간 뜸을 들이고 또 어느 정도 믿음을 쌓은 보람이 있구나 싶어 기뻤다. 
    나는 아이들 사이를 돌며 구경을 했다.
      "어려워 말고 쓰자. 자기가 지금 현재 가장 관심    갖고 있는 것 그걸 쓰면 된다." 간혹 멍하게 앉은 아이들을 이렇게 다독거리면서.
    그 중에 어떤 아이는 자기가 복학생이란 것, 감옥에 갔다 온 과거를 쓰고 있다. 담임이 아닌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런 고백을 하는구나.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비약을 하고 있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좀 더 자세하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꼬치꼬치 얘기하듯 써 보라고 일러주었다. (그 아이 글과 그 뒤 서로 개인으로 만난 이야기는 다음에 그 아이와 의논해 보고 밝히겠다.)
    셋째 시간을 글쓰기 하는 것으로 끝냈다.

      넷째 시간(3월 23일)
    쓴 글을 돌려읽고 고쳐 써 보기

    먼저 10분 남짓 동안 지난 시간 다 못쓴 이야기를 마무리하라고 했다. 다 됐다 싶을 때, 모둠끼리 돌려읽으며 서로의 글을 읽고 느낀 점, 고쳤으면 좋을 부분을 얘기해 보라고 했다. 
    돌려읽을 때는
    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
    ② 대상을 훤히 알도록 쓰지 못한 것
    ③ 좀 더 알았으면 싶은 부분들을 찾아서 지적해 주라고 했다.
    아이들이 왁자하게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이 모둠 저 모둠 돌아다니면서 위와 같은 부분을 지적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적 당한 것이나, 자기가 생각해서 좀 더 자세히 바르게 써야겠다 싶은 것을 공책 왼 바닥에 고쳐 써 보게 했다.(25분 정도 걸림)
    나머지 15분 동안은 모둠별로 가장 잘 썼다 싶은 글을 골라 발표하게 했다.
    아이들은 서로 열심히 얘기하는 듯했으나 나중에 공책을 모아 읽어보니 두어 모둠 외에는 서로 지적해 준 흔적이 없고, 있어도 참고서식 지적이었다. 그리고 모둠별로 발표하는 글도 신통한 것이 없다.(그래도 아이들은 재미나게 듣고 있다.)
    처음 써 본 것이니까 그렇겠지. 다음 시간에는 글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고쳐야 할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를 몇 아이 글을 본보기로 해서 얘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을 마치며 글 쓴 공책을 모았다. 일 주일 동안 읽어 보아야 한다.

      아이들 글을 읽고([지금 자기가 가장 관심 갖고 있는 일]을 글로 쓰기)

    1) 삶이 없다?
    [미리 감아 놓은 태엽이 풀리면서 그 힘만큼만 작은 공간을 만들며 움직이는 장남감처럼 살아 가는 아이들. 그러나 이것도 '체험'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큰 도시 선생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체험 아닌 체험을 체험시키는 일'] 원종찬 선생은 도시 아이들의 글쓰기 지도를 고민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제2호 [장정호네 삶 읽기]) 나도 똑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삶을 어떻게 찾아 줄 것인가? 이상 세계를 펼쳐 보이는 이론은 누구나 말할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당장 바로 이 도시 한복판 학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는 그런다. "우리 글쓰기 월보에 늘 때묻지 않은 산골 아이들이나, 가난에 찌들리면서도 바르게 살아 가는 도시 아이들 글만 실을 게 아니라, 도시에서 풍족하게 살아 가는 아이들 글도 싣자. 도시 아이들이 '핏자' 먹고, 놀이 동산에서 즐겁게 청룡열차 타고, 스키장에 다니는 것도 그들의 삶이다. 이 삶을 왜 인정 안하는가. 이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은가. 혹시 우리는 가난을 이기고 살아 가는 아이들에게 미리부터 점수를 더 주고 있지 않은가. 산골 아이 글이 가치가 있다면 도시 아이의 솔직한 표현은 왜 가치가 없는가. 시대는 많이 변했다."
    그렇지, 시대는 분명히 변했지. 그리고 스키장에 놀러 간 이야기가 무조건 가치 없다는 얘기도 아니다. 문제는 가치 있는 삶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도시 아이들의 글에는 자기 삶의 냄새가 없는 걸 어떻게 하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있지 못한 아이들, 그러니 자기 느낌으로 말하고, 자기 생각으로 글 쓸 줄 모른다. 자기가 몸소 몸 놀려 깨닫는 일이 없다. 이러니 한 반 아이 글을 받아 보아도 기계로 싸구려 복제품 찍혀 나오듯 틀에 박힌 글만 쏟아져 나올밖에. 그래도 이게 현실이다 하고는 통조림 같은 그 글들을 싣자는 말인가. 어림없는 말이다. 오히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우리 어른들의 잘못을 뼈저리게 깨달을 일이다. 
    대세는 정의로울 때가 많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흘러가는 꼴은 자본의 거대한 마수가 우리를 어디론가 휩쓸어 넣고 있는 꼴이지 대세의 흐름이 아니다. 복직한 교단에서 절망을 느끼고 있는 교사들의 아픔이 여기 있지 않을까. 나도 이런 현실 앞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기껏 생각해 낸 것들을 실천해 볼 수밖에 없지. 무얼 생각해 내었나.
    우선 아이들과 나와 마음을 여는 일이다. 
    글을 써 내라고 하면(특히 점수에 반영된다 하면) 아이들은 100% 모두 글을 써 낼 태세가 되어 있다. 이게 세칭 A급지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착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삶을 죽이는 일 가운데 하나가 된다. 베껴내고 꾸며내고 지어내고 흉내내고… 숨이 막힌다. 그러니 우선 나의 진실이 아이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도 비로소 마음을 열고 숨어 있던 자신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내 본래 모습은 무엇이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것들을 거리낌없이 글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믿음과 사랑을 이루는 일이다. 
    아무리 절망스런 모습으로 있는 아이들이라도 마음 한꺼풀만 벗겨 보면 거기엔 맑고도 생생한 피가 흐르고 있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복직 일 년이 지난 요즈음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이들과 믿음을 쌓는 일이 수업 시간 몇 마디 얘기로 되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잘 안다. 그래, 학교 밖에서나 안에서나 내 온 삶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아이들 위해 삶을 바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당장은 아프고 고되어도 끝내는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이 써 낸 글에서 아직은 기쁨과 희망을 가질 수 없지만 눈빛과 행동들을 보면 믿고 사랑할 수 있겠다 싶을 때가 많다. 희망을 가지고 힘들여 일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일은 때로 거대한 구조와 싸우는 일이 되기도 하고, 자신과 싸우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 서로 간에도 믿음과 사랑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이 일은 주로 내가 담임 맡은 반에서밖에 할 수 없지만.) 몸 부대껴 함께 놀고, 밥을 나누어 먹고, 질펀한 얘기를 나누고 그래서 서로 믿고 좋아할 수 있도록. 그런데 우리 반은 아직 모둠일기는 시작 안했다.(5월부터 시작해 볼 참이지만) 아이들이 서로 자기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할 때까지 나는 참고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이 게시판에 글을 갈아붙이고(주로 우리 월보 글), 아이들이 돌아가며 조례 시간에 [아침을 여는 말씀]을 하게 하고, 나는 아이들 속에서 친구가 되어 함께 놀고……. 흉 허물이 없어지고, 좀 빠른 아이는 "어이! 상석이 잘 있었나."며 어리광과 믿음을 보내올 때까지. 
    그 다음으로 할 일은 아직 생각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방법을 곧 찾을 것이다. 이호철 선생이 [재미있는 숙제]를 창조해 내었듯이.

    2) 글에 나타난 아이들의 삶
    보기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면 영어 시간과 수학 시간은 잠만 온다. 한 번 잠이 오며는 거의 졸면서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에나 점심시간에는 여지없이 잠을 잔다. 그러다가 봉고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이상하게 학교만 마치면 자정까지 잠이 안 온다. 집에서는 텔레비 보고 밥 먹고 쉬다가 학원 가는데, 학원에 가서 자습실에서 책을 보다가 한참 후 수업을 시작한다. 학원 수업이 학교 수업보다 더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느낀다. 대충 앉아서 시간을 때우다가 장난도 치고 하면 어느새 수업은 다 마치는데 집에 돌아갈 때는 어두워져 있다. 학원에 가기 싫을 때는 만화방에서 책 좀 보다가, 오락실이 바로 옆이어서 오락 좀 하다가 11시쯤 집에 들어간다. 집에 가며는 부모님은 주무시고 나는 생각으로는 공부 좀 많이 하다가 자야지 하지만 사실은 TV 좀 보고, 공부하는 것도 주위가 산만하게 이거 하다 저거 하다가 대충 보고 끝내 잠자리에 누워 버린다. 그러면 아침이 되고, 어제와 같이 언제나 똑 같은 일상에 나는 다시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보기②
    [나의 현재 최대의 관심은 이 지겨운 학교에 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학교에 도착한 후 잠시도 쉴틈없이 자율학습, 수업, 보충수업 다시 자율학습으로 이어진다. 이런 틀에 박힌 시간표와 자율학습 시간에 감시하고, 몇 분 늦었다고 패는 선생님들, 이 모든 게 나를 미치게 한다.
    이런 일과들이 하루 이틀이면 참겠지만 자그만치 2년이다. 강과 산도 변하는 2년이란 엄청난 세월 동안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정말 생각만 하면 미치겠다. 어쩔 수 없이 학교는 다니지만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학교에 취미가 없다. 그래서 졸업한 뒤 락카페나 커피숖을 할 생각이다.]

    보기③
    [현재로서는 내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꼭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잘 안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저 오직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한 것이다. 공부라고 해야 국·영·수. 밥만 먹으면 국영수만 한다. 학과를 확실히 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한 것도 아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 꿈이 있던데 나는 왜 이렇게 방황하는 걸까. 그렇다고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 것도 아니며 그 반대도 아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공부 잘하여 칭찬 받기 위한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미래에 큰 사람이 되겠다는 아주 막연한 내 꿈은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사'짜 자리 하나 차지하라는 게 어머니 생각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싫지는 않다. 명문대 가면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요직에 오르면 보수도 많고 세상 살 맛이 날 것이다. 솔직히 그렇게 될 자신도 있다. 그러나 한평생 살면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없지만 그래도 내 인생만큼은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해 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있다. 바로 내 인생 설계는 대학에서 배워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 나라 최고 대학에 가서 공부해서 진정한 실력자가 되겠다는 너무 큰 생각도 가지고 있다. 내 미래는 내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므로 나는 내 미래가 어떻게 되든 열심히 살 것이고, 잘되면 더욱 좋다. 우리 나라는 21세기에 아마도 선진국이 될 것이다. 그래서 문과를 선택했다. 선진국은 기술 분야는 몇 사람밖에 필요하지 않고, 이끌어 나갈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어둡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너무나 한심한, 자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 현실. 우리는 이런 글 앞에 절망만 하고 있을 것인가.

    요즈음 아이들은 남학생인데도 외모에 참 많이 신경을 쓴다. 이것이 떨칠 수 없는 자기 관심이란 데야 어쩔 수 있나. 교사들은 이런 현실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기④
    [지금 내 머리 속은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항상 내가 느끼는 것으로 차 있다. 살을 빼는 것이다. 부모님은 "니가 뭐가 뚱뚱하냐"고 하시지만 그런 얘기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을 생각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식사 조절도 해 보고 운동도 해 보았는데 나의 의지가 부족했는지 모두 도중에 그만두었다. 살이 찌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그리 불편한 점은 없다. 하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없어지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또 살을 빼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게으름을 없애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을러서 살이 찌고 살이 찐다고 게을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거의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 역시 점점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다이어트에 관해 써 놓은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은 주로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남자나 여자나 살 빼는데 무슨 차이가 있으랴?' 하는 생각에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다 읽고는 허탈했다. 내용 자체가 내게는 황당했기 때문이다. '달걀 세 개로 하루를 버틴다.' '야채만 먹고 사는 법'……. 그래서 역시 남자의 살 빼기는 여자의 그것과 뭔가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재수하는 형을 찾아갔던 엄마가 오셨다. 형은 살이 무척이나 빠졌다고 했다. '원래 말랐던 형인데….' 형이 측은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던데…. 기숙사에서 얼마나 힘들까? 게다가 재수생이라는 부담감…. "너도 재수해라, 살빠지게." 엄마가 장난스럽게 말씀하신다. 그래도 나의 살을 빼고 말겠다는 신념에 가까운 의지는 아직도 그대로이다. 
    그래서 최근에 새로 정한 목표가 있다. 첫째, 밥그릇에 두 번 밥을 푸지 않는다. 둘째, 하루에 30분 이상 뛴다. 셋째, 저녁 식사 후에는 물 외엔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이 세 가지 목표는 내 몸무게가 정확히 60kg이 될 때까지 지켜야 한다. 그래서 딱 붙는 바지도, 바지 속에 티를 넣어 입는 기쁨도, 남 앞에서 전혀 꿀리지 않는 자신감까지 얻어 낼 것이다.]

    보기⑤
    나의 인상
    나는 우리 학급에서 인기가 없다. 그 이유는 내 인상이 남에게 친근감을 주지 못하는 아주 차가운 인상이기 때문이다. 보통 학급에서 인기가 많은 애들은 운동도 잘하고, 말 같은 것도 재미있게 잘하지만 원래가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이 말은 그 애들의 인상이 인기 있는(친근감을 주는) 인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아무리 운동을 잘하고 또 말을 재미있게 잘한다 해도, 나는 결국 그저 학급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존재로 남게 될 것이고, 또 지금까지도 그래 왔다. 내 운명이니 하고 살아 가야겠지만 워낙 인기가 없다 보니, 어떨 땐 급우들이 꼴 보기 싫어져(다 그런 것은 아니고) 학교 다니기가 싫어질 때도 있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친구는 겨우 서너 명뿐이다. 정말 이번 2학년에서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 보려고 마음 먹었지만 뜻 대로 되지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참 쉽게도 친해지는데 나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그에 대한 응답만 할 뿐 그 뒤로는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나도 남에게 말 걸기를 꺼리게 되었다. 그 결과 새학기가 시작되어 한 달이 지나도록 나는 대여섯 명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말 한번 해 본 친구가 없다. 물론 이름도 거의 모른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평생친구라 하는데, 나는 나랑 특별히 친한 친구 '송ㅇㅇ' 말고는 거의 없어 조금은 걱정이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성욱이 니는 내성적인 게 그냥 딱 표시가 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냥 흘려 버렸지만 갈수록 마음에 걸렸다. 그 뒤로 나는 내 인상에 대해서 좀더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인상이 첫째, 확실히 인기 없는 인상이고, 둘째, 남이 쉽게 말을 걸지 못하는 차가운 인상이고, 셋째, 굉장히 내성적으로 보이는 인상인 걸 알았다. 비록 내 인상이 이 꼬라지이지만 그래도 나는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다. 내가 좀도 마음의 문을 열면 친구들도 언젠가는 나와 아주 친근한 사이가 될 거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고등학생들이 가장 관심 갖는 것은 성적 문제 다음으로 역시 여학생 문제다

    보기 ⑥
    나의 짝사랑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친구이다. 그 중에서도 ㅇㅇ여고 이 ㅇㅇ이다. 나는 중1 때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회사가 이곳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친구도 없었고 그냥 나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애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중3 때 ㅇ학원에서 처음 그 애를 보았다. 좀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을 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애의 밝은 모습과 활발함은 나의 마음을 끌기 시작했다. 나는 멋있게 보이려고 옷 입는 것과 공부하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좀더 단정하게 다니고 공부도 잘해서 모범생처럼 보여 그 애의 마음을 끌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우유부단함이 언제나 방해했다. 우연히 마주쳤을 때 뭐라고 말하면 좀더 인상에 남을 것인가 혼자서 연습도 해 보고, 책에서 좋은 구절을 보면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막상 그 애와 마주치면 좋은 애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 지금이 몇 시냐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로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그래도 나는 용기를 가지고 물어물어 전화번호, 생일 들을 알아냈다. 그러다가 고1 초인가 중반에 그 애가 학원을 그만두었다. 굉장히 섭섭했다. 생일날이나 화이트데이 같은 날에 선물을 주고 싶었고, 가까워지고 싶었다. 라디오에서 슬픈 내용이 담긴 노래를 들으면 그 애가 생각나고, 가끔씩 그 애가 생각나면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곤 했다.
    언젠가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 애가 받았다. 갑자기 당황해지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 쪽에서는 계속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며 다그쳤다. 결국 아무말도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뒤로도 그 애가 생각나면 전화를 걸었다. 그 애가 받으면 좋고 안 받으면 끝이고, 그 애가 받아도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만 듣다가 가만히 끊었다. 
    한 달 전쯤 그 애가 다니는 ㅇㅇ여고에서 학예전을 했다. 혹시나 해서 가 보았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ㅇㅇ부서에서 그 애를 보았다. 큼직한 꽃다발을 주니 환하게 웃으며 오래간만이라며 반갑다고 했다. 친절히 설명도 해 주었다. 설명이 끝나고 나는 방명록을 쓰면서 같이 나가서 먹을 거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방명록에 수고했다는 말을 쓰고 같이 나가자고 할려는데 아는 오빠가 왔다고 다음에 보자며 잘 가라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노래방하는 친구 집에 가서 실컷 노래나 부르고 왔다. 노래를 부르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지금도 그 애를 생각하면 다시 속이 답답해진다. 
    이 글을 부모님께서 보시고 뭐라고 하실지는 모른다. 친구들도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로서는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막힘 없이 적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또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답답한 마음을 토해 내고 나니 정말 상쾌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이 글은 그나마 자기가 겪은 일을 눈에 보이듯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답답한 얘길 해 버리고 나니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처음 하는 글쓰기에서 이런 맛이라도 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
    그리고 때로는 자기 관심 분야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판력을 가진 글들도 눈에 띈다. 다음 글은 만화책에 대한 관심을 쓴 글 뒷부분이다.

    보기⑦
    만화책
    두번째 이유로는 그 만화가의 그림 실력 때문이었다. 우리 나라 만화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무지하게 성실한 그림이었다. 처음 볼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까지 나온 30여 권을 차례차례로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물 그림은 물론이고 대강 그리기 쉬운 건물이나 주위 사람 같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성심성의껏 그리고 있다. 이 만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림이 이렇게 잘 그려져 있으니 보고 싶은 마음은 절로 생기는 것이고 여기다 재미있는 내용까지 보태면 중·고등학생 아니 20대 형님들도 만화를 좋아하게 된다. 이것은 비록 일본 만화지만 보고 느낀 것이 무척 많다. 주제넘은 소리지만 우리 나라 만화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나라 만화도 내용은 무척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림이 너무 형편없다. 물론 모든 만화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만화는 중심 인물만 멋지게 그릴 뿐 배경에 대해선 별 신경을 쓰지 않을 뿐더러 처음에는 성의 있게 그리다가 중반부나 후반부에 가면 전에 있던 배경 그림이 하나씩 없어지고 처음보다 훨씬 더 불성실하게 그린다. 나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줄로 안다. 나는 우리 나라 만화가 좀더 성실하게만 그려진다면 일본 만화의 수입에 대한 걱정은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캠퍼스 Blues는 계속 나오고 있고 내가 본 만화 중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나라나 일본에서 이같은 만화가 나온다면 나는 또 다시 거기에 빠져들 것 같다.

    이것 말고도 아이들의 관심은 저마다 다양하다. 따져 보면 모두 뻔한 것들이지만. 그러나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글을 써 보는 것은 자기를 확인하는 첫걸음이다. 저속하면 저속한 대로, 엉뚱하면 엉뚱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이런 모습을 인정해야 그 다음으로 바르게 자기 모습을 키워 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내놓은 글은 본보기로 내놓은 글은 아니다. 지금 고등학생들의 모습과 수준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을 뿐이다. 이런 글을 썼던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를 지켜보도록 하자. 

    <글쓰기> 3호 (199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