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를 착하고 바르게
  •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교직에서 물러난 86년까지, 우리 나라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일반 교사들에게 국어·산수(수학)·과학·미술·음악… 따위로 여러 가지 연구 서클을(도 단위, 그리고 시·군 단위로) 만들게 하여 거기에 참여하도록 권장했는데, 경북 글짓기 교육 연구회도 이런 관제 교육 서클의 하나였습니다. 어째서 '관제 서클'인가 하면, 이 모임의 회원이 되어 방학 때 연수회에 참가하면 출장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이 서클에서 연수회를 개최할 때나 연수 자료집 같은 것을 만들게 되면 그 비용의 일부를 도교육청에서 보조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제 서클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관제 서클이 아닌, 정말 교사들이 스스로 모여서 교육 문제를 의논하고 연구하는 모임은 어떤 것이라도 허락하지 않았고, 그런 모임이 만약에 있다면 아무리 좋은 뜻으로 아이들 위해 교육을 연구하려고 하는 교사들의 모임이라도 불온스러운 모임으로 몰아붙였으니, 관제 서클 아니고는 생겨날 수 없었습니다.
  • 이런 사정은 전국 규모의 교사 모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 규모의 교육자들 모임은 '대한교육연합회' 하나밖에 없었지요. 사범학교나 교육대학을 나와서 교사를 시작하면 누구든지 저절로 대한교육연합회 회원이 되어 버립니다. 전국 규모의 글짓기 교육 연구 단체가 하나 있었는데, 그 단체는 언제나 교육 행정이나 반공교육을 선전하는 글짓기를 가르치고, 말장난 동시 꾸며 만드는 놀음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행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단체가 있을 수 있었고, 문교부의 장학 시책에 그대로 따르지 않는 어떤 교육 연구 모임도 만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이런 형편에서 어느 시·도와도 다르지 않은 관제 교육 서클의 하나로 되어 있는 경북 글짓기 교육 연구회에, 어쩌다 보니 그만 제가 회장이 되었습니다. 1979년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이왕 이렇게 됐으니 좀 잘해 보자. 이 기회에 글짓기 교육을 바로잡아 보아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회보'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경북 글짓기 연구회에는 '회보'가 없었습니다.
  • 79년 9월 1일자로 나온 경북 '글짓기 회보' 제1호의 첫쪽에는 '참여와 연구'(서클 활동의 원칙)란 제목으로 제가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에는 글짓기 교육 연구 서클 활동에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첫째는 이념의 원칙인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어린이들을 착하고 올바르게 키워 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둘째는 운영의 원칙인데,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로' 모든 회원이 참여하고 의논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행동의 원칙인데, 겉치레 행사 떠벌이지 말고, 회원 많이 끌어모아 자랑삼지 말고, 겉모양만 내는 책 만들려 하지 말고, '정말 어린이를 건강하게 키워 가는 글짓기 교육을 실천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둡고 답답하던 독재 정권 시대에 겨우 이런 정도로 교육자의 양심을 한데 모으려고 했던 것이지요. 아무리 고약한 독재 정권이고 그 권력 밑에서 굽신거리는 관료들이라도 아이들을 착하고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 가겠다는 데야 무슨 흠을 잡아 낼 수가 없지요. 사실 그 무렵 우리가 글쓰기로 아이들을 키워 간다고 할 때 '착하고 바르게'란 말이 가장 절실하고 새로운 목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장학 행정을 하는 어떤 사람도 아이들을 '착하게'나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생겨난 뒤로, 더구나 6·25 전쟁이 터진 뒤로 해마다 정부의 교육 담당 부서에서 장학 방침을 몇 가지씩 정해서 발표하면 각 시·도에서는 그 방침을 말만 조금 바꾸어 그대로 그 시·도의 장학 목표로 삼고, 다시 시·도의 장학 목표는 각 군 교육청의 장학 목표로 적당하게 낱말만 몇 가지 바꾸어 그대로 내걸게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학교에서는 또 군 단위 장학 목표를 그와같이 따라서 학교 교육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래서 우리 팔도 강산의 반쪽은 어느 도시 어느 산골 어느 섬의 학교 교실에서도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군대식 방법으로 일사불란하게 가르치는 교육의 틀로 짜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을 똑같은 틀에다가 찍어내는 거대한 살인교육 공장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알맞는 표현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몇십 년 동안 해마다 문교(교육)부의 장학 목표가 새로 발표되었지만, 그 몇십 년 동안 언제나 변함 없이 나타나는 목표가 세 가지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것은 첫째로 반공도덕 교육의 철저이고, 다음은 과학교육 진흥이고, 또 하나는 예체능교육 진흥(또는 혁신)이었습니다. 마치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문교 장학 목표가 '국체명징' '내선일체' '인고 단련'으로 되어 있듯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 그런데 글짓기 교육은 이 장학 목표 가운데 언제나 나오는 '예체능 진흥'에서 '예'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아이들에게 일기 쓰기를 강요하고, 그 일기도 '효행 일기'라든가, '새마을 일기'라든가, 하루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한 것을 적도록 하는 '선행 일기'를 아이들마다 쓰게 해서 그 통계를 내어 교육을 잘하고 있다고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반공동화책 읽어서 감상문을 쓰게 하고, 새마을, 저축, 불조심, 군인 아저씨 위문문… 따위로 그때그때 교육 실적을 선전하는 자료로 삼기 위해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글짓기라면 다만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고 거짓말 이야기를 지어 내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학교 밖에서 기성 문인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백일장 같은 행사를 곳곳에서 열 때도 어른들 글 흉내내는 짓을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관제 서클에서 글짓기 대회를 할 때도 거짓말 만들어 내는 재주를 겨루는 행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이런 판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 글짓기라는 것이 아이들을 거짓말쟁이로, 자기와 남을 속이는 사기꾼으로 기르는 기막힌 교육으로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착하고 바르게' '정직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의 목표가 절실하고 새로운 것이 되었다고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