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01-22 17:26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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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보리/2004 차례 머리말 책 읽기에 앞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 - 권정생 제1부 어린이를 지키는 교육 1. 말과 삶을 가꾸는 길 (1) 어린이의 글은 어린이의 환경과 생활의 산물이다 (2) 어린이 글의 귀중함 (3) 쓰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4) 문학적인 글과 실용적인 글 (5) 글과 사람 (6) 사심(邪心)이 없는 것이 어린이 마음 (7) 어른의 글과 어린이의 글 (8) 글쓰기와 창작 (9) 글쓰기와 작문과 문학 (10) 심신 장해자와 글쓰기 교육 (11) 농사짓기와 글짓기 (12) 교육자와 글쓰기 (13) 작품의 심사와 발표 (14) 학급 문집의 의의와 조건 (15) 글 고치기 잘못하면 안 하는 것보다 해로운 것 (16) 우리의 믿음과 태도 (17) 수상(隨想) 세 가지 (18) 백일장에서 진단되는 글쓰기 교육 (19) 풍성한 글감, 감동적인 얘기들 (20) 어른들의 글쓰기 2. 어떻게 시작할까 글쓰기 지도 입문1 (1) 먼저, 쓰고 싶은 마음이 되도록 (2) 좋은 글과 좋지 않은 글 (3) 좋은 시와 좋지 않은 시 (4) 아동 문학과 어린이의 글 (5) 글감 찾기에서 발표까지 3. 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글쓰기 지도 입문2 (1) 두 가지 이야기 (2) 시 교육의 목표와 교재의 조건 (3) 교과서의 교재 (4) 본문 공부와 글짓기(작문) (5) 나의 시 지도 방법 (6) 교사들의 창조적 실천으로
제2부 글감 찾기에서 발표까지 1. 글쓰기 어디까지 왔나 2. 쓰기 이전의 지도 3. 무엇을 쓰게 할 것인가 4. 구상 지도 5. 쓰기 지도 6. 서사문 쓰기 7. 감상문 쓰기 8. 설명문 쓰기 9. 주장하는 글 쓰기 10. 글 고치기 지도 11. 발표를 어떻게 할까 12. 시의 이해와 쓰기 13. 글쓰기 지도 계통안
제3부 아동 문장 연구 1. 어린이 글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쓰는 자유, 발표하는 자유 (2) 쓰고 싶은 것을 쓴 글 (3) 일기에 대하여 (4) 산문 지도는 서사문부터 (5) 참글, 거짓글 (6) 거짓 이야기를 아름다운 글로 알아서야 (7) 진실이 담긴 거짓말 (8) 자기중심의 상상과 전체를 보는 눈 (9) 일 속에서 얻은 생각 (10) 훌륭한 삶이 훌륭한 글을 낳는다 (11) 애정과 관찰 (12) 지나친 경어 쓰기 2. 온몸으로 쓰는 글 (1) 창조성을 말살하는 흉내 내기의 동시 (2) 머리로 쓴 시, 가슴으로 쓴 시 (3) 시와 어린이를 가꾼다는 것 (4) 시로써 키우는 어린이 마음 (5) 구김살 없는 동심의 글 (6) 우등생이 빠지는 생각의 틀 (7) 아이들의 잔인성 (8) 수필 쓰기에 대하여 (9) 고등학생의 글쓰기 (10) 백일장은 거짓글쓰기 대회 (11) 청각 장애아의 글 (12) 교과서의 글은 글쓰기의 본보기가 아니다
제4부 학급 문화의 꽃 학급문집 소개․비평 1. 사랑과 믿음의 교실 (1) 아이들의 참목소리 <구름과 물> (2) 주간으로 내는 <꽃교실> (3) 여든여섯 어린이의 <우리들의 이야기> (4) 소박한 어촌의 이야기들 <꽃게> (5) 탄광촌의 시집 <나도 광부가 되겠지> (6) 도시 어린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7) 철학을 가르친 <6학년 9반> (8) 삶을 창조한 <누동 학보> (9) 졸업 기념 문집 <함박눈> (10) 순박한 마음을 담은 <동우리> (11) 학급 신문 <초롱초롱> (12) 귀한 감상 자료 <바람이 많이 부는 곳> (13) 두 반이 협력한 <한들> (14) 리얼한 생활 묘사 <하고 싶은 이야기> (15) 발랄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꽃게> (16) 광산촌의 소리 <하늘로 간 풍선> (17) 생명의 존엄을 일깨우는 <오의 삼 글 모음> (18) 전 직원의 글이 실린 <메아리> (19) 쓰고 싶은 것을 쓰게 한 <하늘 날기> 2. 우리들의 이야기 (1) 구김살 없이 자라나는 <별들의 속삭임> (2) 정직한 삶의 글 <해바라기> (3) 높은 수준의 작품들 <작은 꿈> (4) 생각을 키워 주는 <하고 싶은 이야기> (5) 시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절영도> (6) 즐겁게 살아가는 <해뜨는 교실> (7) 솔직하게 쓰도록 한 <도장나무의 꿈> (8) 재미있는 ‘사람’의 얘기 <처음으로 본 무지개> (9) 온 나라에 알리고 싶은 <우리> (10) 지혜를 늘이는 자리 <우리들의 글> (11) 사랑의 기록 <우리들> (12) 싱싱한 야성의 향기 <들꽃>
머리말
시험
나는 시험이 무섭다.
시험 보고 매 맞고
통지표 받고 매 맞고
내 다리 장한 다리. (5학년 남자 아이)
어른들은 아이들을 짓밟고 그 영혼을 더럽히고 병들게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참으로 신통하게고 잘 견딘다. 순수함을 지킨다. 가엾게도 그 생명이 아주 시들어지고 마는 수도 많지만, 눈물겨울 만큼 잘 이겨내는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 아이들을 믿게 된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 아이들을 배우게 된다. 그 누가 아이들의 글은 아무 가치도 없다고 했던가? 그런 사람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도, 아이들이 읽을 글을 쓸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글이 아무 가치도 없다면 어른들의 흉내를 내게 한 때문이다. 아이들을 원숭이나 앵무새로 만들어 놓고 그런 아이들을 얕보는 어른들이 뜻밖에도 많다. 아이들을 믿게 하는 글, 아이들을 배우게 되는 글, 그런 글을 쓰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긍지를 가지는 글을 쓰게 해야 한다.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간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글쓰기보다 더 나은, 아이들을 지키고 가꾸는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내가 40년 동안 아이들과 살면서 여기에 정신을 판 까닭이 이러하다. 제1부 중에서 ‘말과 삶을 가꾸는 길’은 글쓰기 교육의 문제점과 방향을 논한 것으로 <글쓰기 2호~22호(경북글짓기교육연구회 회보, 1979년 11월~1983년 6월)에 발표한 글들이다. 제2부 ‘글감 찾기에서 발표까지’는 지도 단계론을 중심으로 한 것인데 이 지도 단계론 부분은 지난해 <교육자료>에 연재한 바 있고 얼마 전에는 그 잡지의 부록으로 본의 아니게 다시 묶여 나오기도 하였으나 그 연재된 글이나 부록본이 원래 쓴 원고와도 많이 다를뿐더러 삭제된 부분이 여러 곳이나 되기에 모두 바로잡고 많이 보충해 썼다는 사실을 밝힌다. 제3부는 지난해 <교육신보>에 연재한 글을 정리한 것이고, 제4부는 <글쓰기> 7호~21호(1980년 9월~1983년 4월)와 <참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1호~5호(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보, 1983년 9월~1984년 9월)에 발표한 글들이다. 1966년에 낸 《글짓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이후 글쓰기 교육 전반에 걸친 실천적인 이론을 책으로 내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내가 한 교육의 방향이나 방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18년 전의 좀 어설펐던 이론과 방법을 더 정리해서 확실하게 세웠을 따름이다. 이러한 이론들이 특히 현재의 우리 교육의 비뚤어진 상황 속에서 명확하게 다져지고 세워졌다는 것도 말할 수 있겠다. 글짓기란 말을 글쓰기로 고친 것은, 글짓기란 말이 어딘가 일부러 글을 꾸며 만드는 짓으로 느끼게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교육의 지난날은 어른들의 문학 작품 창작 방법을 그대로 아이들 교육에 적용하여 삶을 떠난 남의 글 흉내 내기를 시켜 왔던 것이다. 글쓰기란 말은, 아직도 대부분의 글쓰기 교실을 지배하는 이런 그릇된 교육 풍토를 바로잡고 싶은 의도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 말은 최근에 쓰기 시작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든 교육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의 글을 읽고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최근에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어른들의 글쓰기도 아이들의 그것과 같은 방법으로 시작해야겠다는 것이다. 이 책이 글쓰기에 뜻을 두는 어른들에게도 적지 않은 참고와 암시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비판을 기다릴 뿐이다. 1984년 11월 이오덕
(3) 일기에 대하여
이미 떠났어
1982년 9월 22일 수요일, 해님이 방긋 웃었다. 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보신 엄마는, “오늘 진이가 몇 번이나 토하고 지금 앵두나무 밑에 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가방을 내던지고 진이가 있다는 앵두나무 밑으로 가 보았다. 진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진이가 왜 그러지?”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마루로 왔다. 한참 후 진이는 이리저리 날뛰었다. 가시덤불 속으로 헤치고 뛰며 담 위로 뛰어오르려다 떨어지기도 하였다. 다시 조용해졌다. 그제서야 나는 진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진이가 죽으면 어쩌지?” 다급히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신발을 신고 마당을 두리번거렸으나 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온 동네를 돌아다녀 보았으나 진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엄마는, “아무래도 진이가 쥐약을 먹은 모양이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나의 마음속은 부들부들 떨렸다. 진이를 다시는 못 만나게 된다니 울고 싶었다. 엄마는 아랫집 담에 기대어 계셨다. 나도 돌 위에 올라서서 마당을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서, “부스럭.” 하고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꼬리가 조금 보였다. “엄마, 진이가 저기!” 아랫집 천막 속에 진이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뛰어 내려갔다. 꺼내 보니 진이의 눈은 감겨져 있었지만 숨만은 가쁘게 쉬고 있었다. 진이를 안고 가축병원으로 뛰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겁이 났지만 쉬지 않고 뛰었다. 간신히 주사 네 대를 맞혀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마음은 조금 안정이 되었다. 진이를 햇볕이 없는 그늘진 곳에 시원하게 눕혔다. 진이는 나을 것 같지가 않았다. 엄마는 우유와 계란을 타서 진이에게 먹였다. “진아, 살아라.” 하시며 먹이는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나 한참 후 진이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버리고 떠나 버렸다. 나는 드디어 참고 있었던 울음을 터뜨렸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진이의 몸은 점점 식어 갔다. 하나님이 미웠다. 자꾸만 꼬리 치며 장난을 치던 진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지난날들이 자꾸만 생각난다. (5학년 여자 아이)
이 글은 어느 아이의 하루치 일기문이다. 요즘 학교마다 아이들에게 일기쓰기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기 쓰기 지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찬반양론이 나올 수 있다. 쓰기 싫어한다고 안 쓰게 하면 더욱 편한 것만 찾게 되고 자기 반성의 기회도 갖지 못하여 인격 형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일기를 쓰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 싫은 것을 억지로 쓰게 하면 결국 마음에도 없는 것을 형식만 갖춰 일기장을 메우게 되니 거짓글을 장려하는 결과가 되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일기 쓰기를 지긋지긋하게 여길 것이니 무리하게 쓰게 하는 것은 교육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또 지도 교사가 일기장을 읽어 주는 것도 찬반양론이 있다. 옛날 일제 때부터 일기장은 검사한다고 말해 왔다. 지금도 일기장을 검사하게 되어 있는 것이 거의 모든 학교의 실정이다. 쓰게 하는 내용도 문제가 된다.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로 쓰게 하는 교사도 있지만, 어떤 교훈적인 내용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교사도 많다. 날마다 한 것을 반성하도록 하는 반성문을 쓰게 하는 교실도 있고, 심지어 충효 일기, 효도 일기, 선행 일기 따위로 이름을 붙이고는 교사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실천한 것같이 쓰게 하는 경우도 있고, 일기장의 양식을 별나게 만들어 착한 일, 효도한 일들을 기계적으로 써넣게 하는 학교나 학급도 결코 드물지 않다. 여기서 일기 쓰기에 대한 의견을 간단히 적어 본다. 일기는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즐겨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성격상, 능력상 도저히 쓸 수 없는 아이란 극히 드물 것이다. 즐겨 쓸 수 있게 하려면 첫째, 어떤 내용을 쓰라고 지시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자유롭게 쓰게 하는 것이다. 둘째, 날마다 일정한 길이로 쓰게 하지 말고, 쓰고 싶은 것이 많을 때는 많이 쓰고, 쓸거리가 없을 때는 한두 줄로 간단히 쓰도록, 그래도 전혀 못 쓰는 날이 있을 것이다. 셋째, 너무 글씨를 잘 쓰라고 강조하지 말 것, 넷째, 교사가 자주 보아 주고 칭찬할 것, 다섯째, 결코 일기장의 양식을 부자유스럽게 만들어 주어서 기계적으로 쓰게 하지 말 것이다. 일기장을 ‘검사’한다는 말은 아주 나쁜 말이다. 검사할 것이 아니라, 읽어서 아이들의 마음과 생활과 가정환경을 알고 깨달아 교사가 배우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일체가 되어 있다면 학생들은 모두 자기가 쓴 일기를 읽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일기의 내용을 지시하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알뜰히 지킨 것처럼 쓰게 하고, 일기장에 기계적으로 어떤 기호나 말을 적어 넣게 하여 훌륭한 교육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더러운 장사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러면 앞에 든 일기문에 언급해 본다. 일기는 선생님이 보게 된다고 하더라고 보이기 위해 써서는 안 되는데, 이 글은 너무 독자를 의식해서 쓴 글이 돼 버렸다. 제목도 별나게 붙였고, 첫머리 한 줄도 어색하다. “해님이 방긋 웃었다.” 이것은 아침의 날씨를 말한 것인가? 낮의 날씨인가? 저녁 무렵을 말한 것인가? 조금도 실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못 되는 이런 요식적인 문장은 이 글 전체의 흐름이 되어 있고, 특히 마지막 대문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표준어 말 맞추기 연습에서 익혀진 최상급의 교과서 흉내 내기 글짓기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일기는 아이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안 되도록 간결하게 쓰도록 함이 좋다. 학교에서 따로 글쓰기 시간을 못 두고 일기 쓰기로 글짓기를 겸하게 할 생각이라면 일주일에 하루쯤, 그것도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날에(쓰고 싶은 것이 많은 날에) 길게 쓰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p.242~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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