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을 멈춰라"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지난해 8월 타계한 국어운동가 이오덕(1925~2003) 선생이 남긴 유고를 묶은 책이다. 세상을 뜨기 1년 전 2002년 6월에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에 자극받아 한 달 보름 동안 쉼없이 써내려 간 것이 1200장의 원고로 쌓였다. 월드컵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잡았지만, 그가 쇠뿔을 잡고 싸우듯 고투해온 교육문제·말글문제·사회문제 따위에 대한 여든 해 가까운 인생의 지혜와 생각을 응축해놓은 원고다.
이 노운동가를 감동시킨 것은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다는 사실보다는 온 국민이 참여한 ‘붉은 악마’의 응원 열기였다. “온 세계를 놀라게 한 그 고함소리가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터져나올 수 있었는가” 그가 보기에 그 고함소리는 8·15해방 때 온 나라 사람들이 외쳤던 함성과 똑같은 ‘해방’의 소리였다. 여러 식자들이 그 함성의 속뜻을 나름대로 풀이했지만, 지은이는 그 풀이들이 근원에까지 파고 들어가는 깊이는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함성의 폭발이 그토록 컸던 것은 그만큼 우리를 내리누르는 온갖 정치·사회·문화의 억압질서가 무거웠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기성질서에 길들여져 몸과 마음이 굳어진 어른들뿐만 아니라 구김살없이 자라는 듯이 보이는 젊은이들도 예외없이 감당해야 하는 족쇄 같은 것이다. 월드컵 함성은 그 족쇄를 풀어버리려는 외침이었다.
지은이는 이 모든 억압의 근원에 ‘교육’이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가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교육, “서로 남 위에 올라서려고 죽을판 살판 다투도록 하는 인간성 죽이는 교육”일 뿐이다. 그런 나라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대접을 못 받고, 더구나 명문대를 꼭대기로 하여 온 대학이 다 서열이 매겨져 있어 그에 따라 사람의 우열이 결정되니, 일류대학 보내려고 아이들이 족쳐 잡동사니 지식을 쑤셔넣는 일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아이들을 망치는 이 ‘반교육’을 혁파해 참다운 교육으로, 아이들을 자연스러운 본모습으로 키우는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들을 사람답게 자라나도록 하는 일, 이것이 우리 겨레가 스스로 해방되는 길이다.”
그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곡식을 기르는 농사꾼의 손처럼 순박해, 정갈하게 무친 산나물을 씹는 듯하다. 그의 분노조차도 솔직함과 깨끗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서 흐려진 눈을 씻어내 세상을 더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마음의 때를 벗겨주는, 그의 글이 지닌 미덕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순도 높은 산문이다.
△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이오덕 지음/ 길 펴냄
한겨레 2004/4/24(토)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억압적 교육과 학벌 새싹들에겐 해방을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이오덕 지음/ 길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지난해 8월 25일 타계한 이오덕씨는 어린이문학과 글쓰기 교육, 그리고 우리 말 바로 쓰기 운동에 평생을 몸바쳐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2002년 6월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 열풍’을 지켜보면서 ‘이같은 열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는 의문을 갖게 됐다. 그 뿌리를 차근차근 파고들면서 완성된 원고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마지막 유고집인 셈이다.
책은, 저자가 평소 생각해오던 바를 마치 실타래를 풀듯이 술술 풀어내고 있다. 그 출발점은 월드컵 당시 전국에 메아리쳤던 ‘붉은 악마’의 함성이다. 세계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았던 이같은 현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는 사회의 갖가지 틀에 억눌려 있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해방’의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젊은이들을 억누르는 틀은 무엇인가. 바로 ‘학벌’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학벌 위주의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학벌의 폐해에서 시작된 문제 제기는 당연히 우리 교육 전반의 문제로 옮아간다. “끊임없이 머릿속에 잡동사니 지식만 쑤셔넣고, 서로 남의 위에 올라서려고 죽을판 살판 다투도록 하는 인간성 죽이는 교육”으로 규정한 저자는 이같은 교육 체계하에서 “사람들이 모조리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까지 말한다.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기는 교육 구조와 경제정책, 교육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조차 교육의 중심에 ‘사람’을 놓지 않고 오로지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비인간적 교육 정책에만 매달리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어린이를 중심에 두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초등교육. 따라서 말하기, 글쓰기, 그리기 등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을 기르는 교육을 아이들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같은 표현 능력의 미비야말로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왕따’와 같은 현상들 역시 이같은 ‘억압적인’ 교육체계에서 비롯됐으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남녀차별과 상하구분 의식, 그리고 억누르는 모든 사회구조의 교묘한 틀이 가장 중요한 교육 문제에까지 파고들어 어린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 희망의 싹은 여전히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있다고 본다. ‘억압의 틀’에 이미 길들여져 몸과 마음이 굳어진 어른들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지만, 지금 막 자라나는 젊은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희망을 가져야 하며, 어른들은 오로지 이들의 희망을 잘 키워내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붉은 악마’의 함성에서 시작된 저자의 사회 진단은 수십년간에 걸쳐 저자가 되풀이 강조해온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월드컵 열기를 보고 불과 두 달 정도의 기간에 걸쳐 써내려간 글은 마치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리할 의도가 아니었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만큼 ‘이오덕 사상’의 전반적인 맥락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문화일보 2004/04/22
차례
머리말
1 신화와 기적,그리고 혁명 함성이 터져나온 곳 억누르는 틀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의 등급 교사의 말과 학생의 말 한문 글자와 한자말
2 생명을 해방하는 표현교육 아이들을 짓밟는 어른들 억누르는 표현과 억눌리는 표현 한 아이의 경우
3 어떻게 보아야 하나 국민의 숨통을 막는 것 드디어 터져나온 소리 붉은 옷 붉은 빛 히딩크가 한 일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시민운동의 몫
4 아이들만이 우리의 희망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길 폭력으로 유지되는 학교의 질서 한문 글자와 우리 역사 우리 문화의 뿌리와 줄기
5 위대한 무식꾼들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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