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런 말이 진짜 우리 말이다. 나물이란 말 하나 잘 살려 쓰게 된다면 그 나물을 먹으면서 이 땅에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저 파란 하늘 같고 맑은 바람 같은 마음을 다시 우리 몸 속에서 살려낼 수도 있다. 그 나물의 참 맛을 알게 되면 자연 그대로의 싱싱한 모습으로 우리 모두가 다시 살아날는지도 모른다. 우리 말을 찾아 가지는 일은 이래서 우리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우리 영혼을 찾아 가지게 되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 된다. (본문 중에서)
나물에는 밭나물, 들나물, 산나물, 바다나물(바닷말)들이 있다. 그러니까 논밭에 심어 가꾸는 나물과 산이나 들이나 물 속에서 절로 나는 나물이 있어서 반찬으로 해먹을 수 있는 모든 푸나무의 잎과 줄기와 뿌리와 열매를 나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나물 가운데서 밭에 심어 가꾸는 나물만을 가리켜 남새라고도 한다. 그러니 우리 말로는 나물과 남새다. 한자말 좋아하는 글쟁이들은 채소라고도 했다. 왜 이런 뻔한 말을 하나? 사람들이 모두 우리 말을 하지 않고 일본말 따라 '야채'라 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책 소개 글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 다시 말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살아 있는’ 글쓰기”라고 늘상 말했던 이. 그래서 자신은 세상을 떴지만, 언제까지고 살아 있을 글을 남긴 이. 바른 우리 말·글 쓰기와 아동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오덕 선생의 수필집이 나왔다. 선생이 지난해 8월 타계하기 얼마 전 즈음에 주로 쓴 글들이다.
선생은 봄나물에 얽힌 얘기를 하면서도 우리 말의 빼어남을 알리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한자말로 ‘채취하다’ 하나로만 돼 있는 말이 우리 말로는 나물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씀바귀·냉이·달래·더덕은 캐고, 쑥은 뜯는다. 돌나물은 걷고, 다래잎은 훑는다. 고사리는 꺾고, 미나리는 (나물칼로) 자른다.
자연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까치·병아리·고양이·개에 얽힌 얘기를 통해 다른 생명은 무시한 채 자신들만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마지막 삶을 보낸 충북 충주 근처 무너미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농촌 마을의 아픈 현실도 보여주고, 대구 지하철 참사 얘기를 통해 아이를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겨레신문 서정민 기자 2004.06.05
시골, 무너미 마을에 사는 천씨 노인의 맏아들은 순경인 동생의 집에 들렀다가 조카가 아버지의 권총을 꺼내 장난치다가 쏘는 바람에 숨진다. 그 며느리는 남편이 숨진 뒤 남매를 키우지만 그 아들(천노인의 손자)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면서 산다. 소풍가던 아들(천노인의 증손자)이 교통사고로 숨진 뒤 술로 슬픔을 잊으려다 자신마저 횡액을 당한 것이다. 천노인도 증손자가 죽자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비극의 교통사고 그리고 자살’에서)
늦가을 어느날 그의 집에서 기르는 닭집의 병아리 몇 마리가 추위에 죽었다. 어미닭이 품고 있던 병아리를 둔 채 어디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집에서 저만치 떨어진 논도랑에서 다른 병아리들을 품고 있다가 발견됐다. 동네 개농장에서 개에게 삶아먹이겠다며 양계장에서 수천마리를 사오다가 길에 떨어뜨린 병아리들이었다. 병아리들이 추위에 떨며 울다 보니 그 소리를 들은 어미닭이 달려가 품다가 자기 새끼를 돌보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병아리의 죽음’에서)
천노인처럼 나무처럼 산처럼 본디 뿌리 박은 곳에서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모았다. 그러면서 병아리처럼 삶의 소중함을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 그가 쓴 ‘나무처럼 산처럼’ 1권을 서울대를 나온 사람에게 선물했더니 “어려워 잘 읽지 못하겠다”고 하더란다.
배운 사람이 산새를 비롯한 자연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그가 굳이 글을 쓴 까닭이 있다. 병아리를 혹 ‘달걀에서 태어나며 노랗고 부드러운 털에 손바닥에 올려 놓으면 숨을 할딱이는 게 느껴질 만큼 앙증맞은 닭의 새끼’라고 풀어야 알아들을 만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경향신문 김윤숙 기자 2004-06-05
≪나무처럼 산처럼 2≫ 이오덕 지음, 산처럼 펴냄.
차례
- 머리말을 대신하여 : 쓰레기 강산
제1부 - 진달래 붉은 산을 바라보며 들나무 산나물 봄에 피는 꽃 분디나무와 초피나무
제2부 - 자연과 어울겨 사는 길 까치 이야기 병아리의 죽음 고양이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늘 그리고 개 짖는 소리
제3부 - 개고기 논쟁을 다시 본다
제4부 - 무너미 마을 사람 이야기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겨레 모둠살이 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하나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돌아갈 고향도 없다
제5부 - 모든 것을 잊어도 노래만은 살아남아 재앙은 누가 일으키는가 사람이 기계가 되면 그 먼 길을 걸어가면서 혼자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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