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7-26 23:38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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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머리말 1. 본 것 쓰기 2. 들은 소리, 들은 이야기 적기 3. 느낌과 생각 4. 늘 겪는 평범한 일 5. 먹는 이야기 6. 일과 놀이 7. 나와 남, 그리고 세계 8. 자연과 어린이 마음 작품 찾기 무엇을 쓸까요? ―책 머리에 글을 쓰려는 어린이들이 맨 처음에 부딪치는 문제는 무엇을 쓰나 하는 일입니다. 어떤 어린이는 아무것도 쓸 것이 없어서 쩔쩔매는데, 어떤 어린이는 이것저것 쓰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쓸 것이 많은 사람이야 여러 가지 쓸 거리 가운데서 가장 쓰고 싶은 것, 쓸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내면 되겠지만, 아무것도 쓸 것이 없는 사람이 큰일 났지요. 쓸 것이 없는데 어찌합니까? 쓰고 싶은 이야깃거리만 있다면 그 다음에는 그 이야깃거리의 보따리를 잘 풀어 놓기만 하면 됩니다. 글쓰기 공부는 쓸 거리를 장만하는 일이 가장 근본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무엇을 쓸까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는 자리를 꼭 여덟 자리 마련했습니다. 이 여덟 자리에는 자리마다 여러분과 같은 어린이들이 쓴 글이 여러 편 나오고, 그 어린이 글 다음에는 글마다 그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적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어린이 글과 내가 쓴 글을 읽어 나가면 아마도 여러분들은 저도 모르게 어느새 글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환하게 틔어질 것이고, 그래서 글쓰기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보기글에는 각 지방의 어린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겪은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나도 이만큼 쓰겠다’ ‘이건 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적었는 걸’ ‘이 글은 잘못 썼어. 난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있어’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그래서 글이 저절로 쓰고 싶어질 것입니다. 부디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이 참 사람 되는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이 세상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1993년 4월 이오덕 ※ 이 책에서 보기로 든 글은 내가 지난날 지도했던 어린이들의 글과, 일부 연재했던 잡지에 보내온 어린이들의 글 밖에, 여러 학급문집에서 가려 뽑았습니다. 이렇게 문집에서 가려 뽑은 글은, 글 끝에 묶음표로 그 글이 실렸던 학급문집의 이름과 문집이 나온 때를 밝혀 놓은 것도 있고, 밝히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학급문집들을 지도하신 여러 선생님들의 이름을 다음에 밝혀서, 참된 글쓰기로 어린이들을 지켜 주시는 수고스러움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글이 나온 차례대로이며, 존칭을 줄였습니다.) 이호철 김익승 주순중 김녹촌 송정옥 주중식 윤태규 이승희 이성인 천정치 류인성 배 숙 배홍태 권혁범 김진문 유병국 최명표 임병조 김경철 3. 느낌과 생각 우리는 무엇을 보든지 듣든지, 공부를 하든지 놀이를 하든지 일을 하든지, 언제나 마음속에 어떤 느낌이나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쓰더라도 느낌과 생각이 저절로 조금씩은 나타납니다. 그러나 느낌이 컸을 때나, 생각을 좀 깊게 하거나 많이 했을 때는 그 느낌과 생각을 중심으로 해서 글을 쓰게 됩니다.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느낌이나 생각이 담긴 글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요? 책을 읽어서 얻은 생각이나 선생님의 말씀으로 들은 것을 그대로 제것처럼 써서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 하더라도)결코 남들이 감동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기가 살아가는 일 속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이라야 합니다. 조그만 것이라도 삶 속에서 진정으로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써야 좋은 글이 됩니다. 어항 속의 물고기 /서울 유석 2년 강동우 내가 잡으려면 도망가고, 잡지 않으면 안심하고 노는 물고기가 참 불쌍하다. 사람은 얼마든지 자유로운데 물고기를 사람이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내가 물고기를 잡았더라면 아마도 물고기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이고 아파, 빨리 놓아 주셔요.” “아이고 무서워, 제발 살려 주셔요!” 나는 절대로 동물을 죽이거나 잡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에 대해서 생각한 것을 썼습니다. ‘생각’이란 참으로 귀한 것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흔히 남의 생각이나 어른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 생각처럼 쓰는 일이 있지요. 실지로 무엇을 보고 듣고 일하고 하는 가운데서 얻은 생각이라야 제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만을 쓰지 말고 실지로 무엇을 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앞서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 이 글에는 ‘내가 잡으려면 도망가고, 잡지 않으면 안심하고 노는 물고기가 참 불쌍하다.’고 첫머리에 써놓았습니다만, 한 일을 너무 간단하게 썼습니다. 좀 자세히 써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그런 장난을 했는가 하는 것도 알 수 있도록 써야 합니다. 어항의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도 물고기를 모르고 물고기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짓이라 하겠습니다. 장기 /경북 북동 6년 이영환 첫 시간 시작하기 전에 삼학년 일반 선생님과 장기를 주었다. 삼학년 일반 선생님에게는 장기를 이겼다. 이긴 것은 실수였다. 점심 시간에 일반 선생님의 제자들이 장기판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온 애들을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장기를 두었다. 몰려온 아이들의 이름을 몰라 생김새를 말하자면 눈이 큰 아이, 뚱뚱한 아이, 키가 큰 아이, 여럿이 왔다. 장기를 뜨니깐 옆에 있는 아이가 훈수를 두는 것이다. 난 끝내는 지고 말았다. 지고 나니 내 꼴은 말이 영 아니다. 나에게 진 삼학년 일반 선생님의 마음을 알겠다. (4324년 11월 20일 날씨는 좋지만 내 마음은 안 좋다.) (신나는 교실 1991.12) 학교에서 장기를 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옆 반 선생님을 이겨냈으니 실력이 대단하군요. 선생님이 졌다는 말을 듣고 그 제자들이 여럿이 왔는데, 그 아이들 이름을 몰라 적지 못하고, 그 생김새를 ‘눈이 큰 아이, 뚱뚱한 아이, 키가 큰 아이…’로 적은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아이가 훈수를 해서 지고 난 기분을 ‘내 꼴은 말이 영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에게 진 선생님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하고 생각한 것이 훌륭합니다. 인사 /서울 월천 6년 김준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인사에 매우 인색한 것 같다. 복도에서 만나도 그냥 지나치고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다. 또 엘리베이터에서는 사람을 보았어도 인사는 하지 않고 층수 변하는 것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며칠 전의 일이다. 친구 어머니께서 지나가셔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아줌마께서 그냥 지나치셨다. 그때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만약에 아줌마께서 인사를 받으셨더라면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나의 경험만 봐도 인사는 참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인사를 잘 하고 잘 받아야 할 것이다. (5.7) (하늘 1991.7) 참 잘 보고 잘 생각했어요. 정말 사람들은 바로 옆에 살면서 늘 만나도 인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사람을 이렇게 차가운 돌덩이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더구나 어린이가 인사를 해도 대답을 한 하다니 기가 막힙니다. 그럴수록 여러분들은 병든 어른들에 물들지 말고 끝까지 그 고운 마음을 지켜가세요. 한 군데 잘못 쓴 말이 있습니다. ‘또 엘리베이터에서는 사람을 보았어도’라고 쓴 대문에서 ‘보았어도’는 ‘보아도’라고 써야 합니다. 어떤 할머니 /경북 부림 6년 김필선 우리 집 앞에는 셋방을 하는 집이 있다. 이 집에는 학생, 아줌마가 산다. 그런데 오늘 할머니 한 분이 셋방을 산다고 왔다. 그 할머니는 아들이 있어도 그 아들이 할머니를 안 모시려고 한다고 한다. 할머니께선 아들 한 분뿐이다. 그 아들을 얼마나 고이고이 키우셨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다 키워 놓으니까 자기 어머니를 안 모시려고 하니 밉다 밉다. 그 아들의 직업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이라 하는 사람이 자기 어머니를 안 모시려고 하다니…그 아들은 불효를 하고 있다. 불쌍한 할매, 애먹고 키워도 키운 그 정성 모르는 사람. (1987.8.2.맑음) (꽃교실1987) 이웃집에 셋방을 얻어 살게 된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썼습니다. 요즘 흔히 있는 불쌍한 할머니이지요. 이래서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가 짐승의 사회보다 못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자기 이야기, 자기 집 이야기뿐 아니라 이웃사람 이야기도 이와 같이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여자 /경북 부림 6년 김필선 어디에 놀러 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빠는 해수욕장에 가자고 했다. 나는 은혜사에 놀러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어데 여자가 아무데나 뻘떡 뻘떡 뛰 다닐라 하노. 니 나이 몇 살인데 어린애처럼 말하노. 여자는 커갈수록 얌전하고 어디에 가드라도 혼자 가면 안 된다.” 하셨다. 난 그 말이 궁금했다. 왜 여자는 커갈수록 혼자 다니면 안 될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여자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남자한테 위협을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지 싶다. 왜 이름을 ‘여자’라고 붙였을까? ‘자여’ 해도 되는데 이상하다. 또 왜 하필 여자만 아기를 낳을까? 이상한 기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옛날에는 남자들이 하늘이고 여자들이 땅이라고 남자들의 종처럼 시중을 다 들어야 했다. 밥도 남자와 같이 안 먹고 했다고 한다. 남자는 방에서 먹고 여자는 부엌에서 바가지에다가 밥을 먹었다고 한다. 여자를 너무 무시했는 것 같다. 같은 사람끼리 정말 너무한다. 남자가 시키는 일은 여자가 다 해야 된다는 것은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뭐 남자는 손도 없고 발도 없나 뭐. 요즘에는 별로 안 그렇지만 그래도 여자를 무시하는 버릇은 아직도 남아 있다. 참 여자들은 불쌍하다. 남자 시키는 일 해야 하지, 시부모님 시키는 일 해야 하지, 또 아기를 낳을 때 여자 아이를 낳으면 꾸중을 하신다. 왜 남자만 이 세상에 필요한가? 아기를 낳을 때 힘이 얼마만큼 드는지 알면서도 꾸중을 하신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싹 없어 봐야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1987.7.19.구름이 좀 낌) (꽃교실 1987) 여자가 남자들에게 억눌려 살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기에 특별히 어떤 일을 보거나 당한 것을 쓰지 않아도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역시 뚜렷하게 어떤 일을 겪었던 사실을 앞에 써 놓으면 읽는 사람이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 글은 오빠가 해수욕장에 가자고 하는데 저는 어느 절로 가고 싶다고 했다가 어머니 핀잔을 들은 데서 남자와 여자가 다 같은 인권을 가질 수 없는 잘못된 세상의 문제를 생각하세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머리에서 ‘어디에 놀러 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는데 그런 얘기가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나왔는지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참 이것이 일기지요. 일기니까 이렇게 쓸 수 있겠습니다. 부서진 집 /부산 연지 3년 이언경 학교에 가고 있는데 어떤 집에 부서진 채로 그냥 있었다. 그 집은 며칠 전부터 그냥 그대로 있는데 어떤 건물을 세울까 궁금하다. 나는 거기가 연지에 있는 놀이터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지만 거기는 가게나 아파트가 생기면 이상할 것이다. 그리고 놀이터도 이상하다. 그 이유는 그곳에 아파트를 세우면 차 소리 때문에 그렇고 또 가게를 세우면 가게가 너무 많아 안되고 놀이터는 차가 들락거리기 때문에 되지 않고,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세우던 말던 나는 상관이 없지만 내가 그 땅의 주인이었다면 무엇이 낫겠냐고 생각하면 그냥 꽃가게 아니면 문구점이나 철물점 같은 것들을 짓겠다. 그런 것을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일 뿐이지 어른은 그런 것들을 세우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더 기다려지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더욱 기다려지니까 그렇다. 이것은 공상―공중에 둥 뜬 생각을 쓴 글입니다. 학교에 가면서 공상을 한 것이지요. 사람은 더러 이런 공상을 하는 수가 있고, 공상을 즐기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보이는 것도 생각에 따라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이 되지요. 그런데 맨 마지막에 쓴 말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더 기다려지니까…’부터는 마음에 안 드네요. 공연히 말을 늘어놓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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