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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6-08-27 04:40
    어린이책 이야기/소년한길/2002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1,754  
    어린이책 이야기/소년한길/2002
    차례
    머리말
    제1부 󰠾 가난과 꿈을 이야기한 책 세 권
    흐린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문학정신
    ․박기범 동화집《문제아》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는 따스한 눈길
    ․김중미 소년소설《괭이부리말 아이들》
    아름답고 참되게 살아가는 꿈
    ․황선미 장편 동화《마당을 나온 암탉》
    세 작품에 대한 글쓰기회 회원들의 의견
    제2부 󰠾 사람과 자연, 현실과 초현실
    강아지가 보는 사람 사회
    ․권정생 글《비나리 달이네 집》
    손쉽게 써 버린 꿈 이야기
    ․이현주 글《외삼촌 빨강 애인》
    허황하고 괴상한 이야기들
    ․임정자 동화집《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사실성이 없고 어지럽게 읽히는 글
    ․이상권 동화《엄마 생각》
    참된 자기로 돌아가기
    ․김우경 동화《수일이와 수일이》
    잘못된 삶을 깨우쳐 주는 이상한 세계의 이야기들
    ․윤태규 동화집《이상한 학교》
    제 3부 󰠾 번역 동화, 그 밖
    고구마를 심고 가꾸어 보고 싶어지도록 할 수 없을까
    ․도토리 기획《고구마는 맛있어》
    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주는 이야기
    ․야시마 타로 글그림《까마귀 소년》
    자연, 그 위대한 교과서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 동화《우리들의 여름》
    중고등학생들에게 주는 자서전
    ․이상석 글《못난 것도 힘이 된다》

    머리말
     지금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방 안에 갇혀 책을 읽고 쓰고 외우는 것을 공부라고 하고 있다. 머리속에 온갖 잡동사니 지식을 쑤셔 넣는 비참한 공부를 죽기 살기로 하느라고 그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지고 비틀어지고 있다. 날마다 등에 지고 어깨에 메고 다니는 책은 아이들을 짓누르는 짐이 될 뿐 아니라 아이들을 절대로 지배하는 우상이 되었다. 이 우상은 아이들을 꽉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그 속에 가두어 놓고서 숨을 쉬지 못하게 하고, 앞을 못 보게 하고, 귀를 막아 온갖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못 듣게 한다. 이 우상은 또 온갖 병든 말, 잘못된 어른들의 말, 어려운 한자말과 서양말, 일본말 투성이로 되어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상대로 해서 돈벌이 판을 벌이게 되는 사정이 이러하다. 오늘날 학교 공부를 했다고 하는 사람들, 바로 오염된 책으로 머리속에 앎을 갈무리해 주고 있는 사람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가장 넓은 자리가 아이들 상대로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책을 읽히는 일을 하는 자리다. 어린이책을 만들고, 동화를 쓰는 동네가 이래서 전에 없이 활기를 띠고 시끌벅적하다.
     이런 판에서 나는 아이들이 읽는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수없이 쏟아져 나온 책 가운데서 겨우 여남은 권을 가지고, 그 속에 얼마나 좋은 것이 들어 있는가, 또 나쁜 것이 들어 있지는 않는가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아이들을 그 우상의 억압에서, 우상의 권위에서 아주 짓밟혀 버리게 되는 일을 조금이라도 멈추게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급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읽게 되어 있는 책 가운데서 그래도 그래도 아이들을 덜 괴롭히는 책, 더ㅗ러는 아이들이 즐겨 읽게 되어 있는 책이 문학책이고 이야기책, 동화책이다. 그렇다면 책이란 우상이 아이들을 꽉 붙잡고 있는 이 시대에, 어린이문학은 마땅히 우리 아이들을 풀어놓아 주는 책,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 주는 책으로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되어 있는가? 아이들이 세상을 올바른 눈으로 보도록 하고, 자연의 소리를 듣게 하고,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을 가지게 하고, 사람다운 행동을 하게 하는 책으로 되어 있는가? 부질없이 남의 것을, 더구나 서양 것을 쳐다보고 부러워하게 하는 책으로 추악한 어른들에 물들지 않고 언제나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이야기로 되어 있는가? 왜 이런 것을 따지게 되는가 하면, 어린이문학이란 것이 바로 우이 아이들을 우리 겨레의 아이가 되게 하는, 가장 귀중한 겨레교육의 수단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우선 그 책의 겉모양부터 눈길을 끌려고 요란하게 꾸며 놓은 데다가, 내용이 되면 그저 얄팍한 웃음을 팔거나, 기괴한 이야기를 제멋대로 해 놓거나, 어수선한 글로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솔직히 말해서 작가가 될 만한 수련을 쌓지도 않은 사람들이 하부로 너절한 상품을 만들어 내는 시장 형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작품 속에 나오는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되면 동물이고 식물이고 제대로 나타내어 놓은 경우가 아주 드물다. 깨끗한 우리말로 된 책, 잘못된 말을 퍼뜨리지 않는 책도 좀처럼 볼 수 없다.
     이래서 이 책 이야기는, 지금 글을 쓰는 분들에게는 달가운 말보다 대체로 거슬리는 말이 되거나 따가운 비판으로 들릴 말이 더 많을 것 같다. 내가 본 눈이 바르게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읽는 이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아무튼 우리는 모두 이렇게 해서 책이라는 우상을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뜻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어린이책 이야기를 하면서 비판도 하고 충고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이 책과 어린이를 살리는 길이 이것밖에 달리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1․2․3부로 나누어 놓았는데, 1부에서는 최근에 가장 많이 읽히면서 이야기거리가 된 책 세 권을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그 밖의 동화책 여섯 권을 살펴보았고, 3부에서는 공부거리가 되는 책 한 권, 그리고 번역한 책 두 권과 중고등학생이 읽게 되어 있는 책 한 권을 다루었다. 책 이야기마다 우리말을 살려 쓰는 문제를 내놓은 까닭은, 우리 어린이문학에서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해서 해야 할 일이 우리말을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이어 주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디 글을 쓰는 분이나 책을 읽는 분들이 우리말 우리 얼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모아 주었으면 좋겠다.
                      200년 6월 이오덕

    강아지가 보는 사람 사회
    《비나리 달이네 집》
    권정생 글․김동성 그림
    낮은산․2001․6․20
     이 동화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농사꾼 아저씨와 강아지 달이가 주고받는 말이다.
     “달아, 사람 다리가 몇 갠지 아니?”
     “두 개.”
     “개 다리는 몇 개?”
     “네 개.”
     “그럼 달이 다리는?”
     “세 개.”
     “에구, 달이는 사람도 짐승도 아닌 도깨비구나. 아니면 무시무시한 괴물이고.”
     “아니야, 달이는 그냥 달이야.”
     다리가 세 개뿐인 강아지. 이것은 이 동화를 읽는 이들에게 처음부터 큰 충격을 준다. 개는 다리가 네 개인데, 다리가 세 개밖에 없으니 어떻게 걸어 다닐까? 그리고 어째서 이 강아지는 다리 하나를 잃었을까? 바로 이 세 다리 강아지가 이 이야기의 주인이고, 이 이야기의 주제가 여기 있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사실 사람과 강아지가 주고받는 이 말은 중간쯤에도 똑같이 나오고, 마지막에 가서 또 한 번 나온다. 다만 마지막에 가서는 아저씨의 마지막 물음에 대한 강아지의 대답이 ‘세 개’가 아니고 ‘네 개’다.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꿈의 세계, 바람직한 그 온전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구차한 설명이나 이론, 자세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지도 않고 대뜸 이와 같은 간결한 문답으로 전하고 싶어 하는 생각과 이야기의 알맹이를 읽는 이들 모두가 바로 느낄 수 있게 하여 큰 충격을 안겨 준다. 그러면서 아주 차분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농사꾼 아저씨가 오히려 강아지가 달이를 놀리는 듯한 말을 하도록 해 놓았다. 그래서 이 대화는 그 효과가 한층 더 잘 나타난다.
     통나무집에 사는 이 아저씨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강아지 달이 자랑을 하면서, 달이는 스님 같기도 하고 도사 같기도 하고 예수님 같기고 하다고 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그런 말이 도무지 곧이들리지 않아 귀가 간지럽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아지나 토끼나 산에 사는 노루나 늑대나 호랑이나 모든 짐승들은 사람들이 벌이는 그 무시무시한 전생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잖아요.
     총칼도 안 만들고, 핵폭탄도 안 만들고, 거짓말도 안 하고, 화도 안 내고, 몰래 카메라가 없어도 도둑질도 안 하고, 술주정뱅이도 없고, 가짜 참기름도 안 만들고, 덫을 놓아 약한 짐승도 안 잡고, 쓰레기도 안 버리고요.
     이 동화는 강아지의 눈에 비친 사람의 모습, 강아지에 대비되는 사람 사회의 추악함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강아지의 눈으로 보면 종교의 모든 교리와 의식 같은 것도 다 헛된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살피게 된 신부는 강아지와 같은 동물의 세계가 그리워서 산골로 들어가 농사꾼이 된 것이다. 강아지가 스님 같고 도사 같고 예수님 같다고 한 까닭이 이러하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 사람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를 어린이들에게도 곧 느껴서 알게 하고, 그런 문제들이 어린아이들의 삶에도 깊이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라 하겠다.
     이 동화가 깨끗한 우리말로 쓴 매우 보기 드문 글로 되어 있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다. 가령 예를 들면 ‘그 집에서 달이하고 늙수그레한 아저씨 하나하고 두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고 썼는데, 보통의 동화작가라면 거의 모두 ‘아저씨 하나하도 두 식구가’를 ‘아저씨 한 명과 두 가족이’로 쓸 것이다.
     이 동화는 3년쯤 전에 대구 근처 어느 장애아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에서 내는 조그만 소식지 같은 책에 실었던 것인데, 그 때 그 곳 장애 어린이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림도 매우 성실하게 그렸다. 이만 하면 ‘우리도 이런 그림동화책이 있다’고 어디에서나 버젓하게 내어 놓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비나리 달이네 집》을 읽고 곧 지은이와 전화를 했는데, 다음은 그 전화 내용이다.
     이 권 선생님, 출판사에서 보내 준 《비나리 달이네 집》 잘 읽었습니다. 아주 중대하고 절실한 문제를 아이들도 잘 느끼고 알 수 있게 쓴 이야기가 되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사람이 개보다 못하다는 것, 개가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나도 글을 써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는데… 이거 최근에 쓴 작품이지요?
    권 아닙니다. 3년쯤 전에 쓴 건데요, 대구 근처에 있는, 장애아들 모아서 살아가게 하는 어느 시설에서 내고 있는 팸플릿 같은 데 실었던 겁니다. 그 때 그 곳 아이들이 내 그 동화를 읽고 아주 좋아했다고 그래요. 이번에 그림책으로 내면서 좀 더 글을 보태어 길게 썼습니다.
    이 그러니까 아직 널리 읽히지는 않았네요?
    권 그렇지요. 그 때 그 장애아들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이 저는 요즘 날마다 1킬로미터쯤 되는 골짜기까지 걸어갔다가 옵니다. 그 골짝에 앞으로 가서 있게 될 조그만 흙집을 지어 놨어요. 거기까지 가서 한참 쉬었다가 오는데, 가고 오는 길 옆 밭둑과 산기슭에서 산딸기를 따먹어요. 산딸기가 온통 빨갛게 지천으로 익어서 저절로 떨어져도 아무도 따먹는 사람이 없어요. 아이들도 없고, 어른들도 안 따먹어요. 따먹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권 아이들이 김치와 된장을 가장 싫어한다고 하지요. 이래 가지고 우리 민족이 어찌 되지요?
    이 앞날이 캄캄합니다. 그런데 또 그 산길을 가고 오면서 어처구니없는 걸 봐야 합니다. 좋은 밭 자리는 모두 담배 밭인데, 담배 밭 들머리 길바닥에 먹고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 젓가락들이 여기저기 밟힙니다. 깔고 앉았던 공장 제품의 자리까지 버려져 있고, 지나가던 차에서 몰래 버린 온갖 쓰레기가 개골창에 쌓였습니다. 그걸 보지 않고는 산길을 갈 수 없으니 가슴이 막히지요. 정말 사람이 개나 돼지 정도만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권 사람이 너무 타락했어요.
    이 권 선생님 책 읽는 아이들은 사람 살아가는 일을 좀 달리 생각하게 될 겁이다. 그 무거운 주제를 아이들도 쉽게 잘 받아들이도록 썼어요. 사람과 강아지가 주고받는 말도 아주 자연스럽게 되어 있어요.
    권 팬터지라는 말을 요즘 많이 하는데, 그거 우리말로 하면 어떻게 되지요?
    이 공상이라든가, 환상이라고 해야겠지요. 초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권 동화란 것은 현실이고 공상이고 다 함께 들어가 있는 것 아닙니까? 굳이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나누어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 그렇지요. 실제 작품을 가지고 말하면 아이들 세계에는 현실과 초현실을 나눌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 작품이 제대로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써 놓은 작품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 팬터지 동화란 것을 좋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작품 가지고 얘기하지 않아요. 공중에 뜬 이론만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 말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권 문학 이론을 말하는 것도 그렇고 작품 쓰는 것도 그런데, 어른들 글이 아이들 글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돼요. 선생님이 쓰신 《한 사람의 목숨》, 그거 일본 아이들 시 번역한 책 말입니다. 그거 읽고 또 생각했는데, 어른들이 아무리 아이들 생각하면서 재주를 부려 동시란 것을 쓴다고 해도 아이들 자신이 쓴 시만큼 안 돼요. 선생님이 내신 그 《일하는 아이들》에서 써 놓은 우리 아이들의 시, 그런 시를 아동문학을 한다는 동시인들은 결코 쓸 수 없습니다.
    이 시를 제대로 아는 어른들이 별로 없습니다. 이름이 시인이라는 사람들조차 그렇지요. 그러니까 한겨레신문 같은 데 아이들이 쓴 시라고 해서 가끔 실어 놓은 글 보세요. 그게 무슨 시입니까. 그런 걸 보고 그게 시라고 아이들이 흉내 내지요. 그러니 지금은 아이들도 《일하는 아이들》에 나온 시 같은 시를 쓰는 아이가 없습니다. 학교서도 여전히 말장난이나 가르치고요.
    권 문학조차 이렇게 되면 앞날이 어떻게 되지요? (이하 줄임)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일본의 어느 작가가 쓴 반핵 반전을 주제로 한 장편동화 《말하는 나무 의자와 두 사람의 아이다》가 생각이 났다. 그 동화는 전체 이야기가 초현실-이른바 팬터지로 되어 있는데, 그 팬터지의 세계가 그대로 현실이기도 하다. 팬터지가 제대로 진실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자면 그것이 한갓 공상이라고 느끼지 않도록-현실이라고 느끼고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진짜 팬터지라는 문학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권정생 선생의 《비나리 달이네 집》은 팬터지 수법을 써서 훌륭하게 성공한 작품이다. 또 그래서 이런 작품을 팬터지 동화라고 할 필요가 없고, 생활동화니 사실동화니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동화일 뿐이다. 권 선생이 “동화라면 현실과 초현실이 함께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구분이 안 되어야 한다”고 한 말은 이래서 동화가 무엇인가를 잘 밝힌 말이라 생각된다.  (p.187~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