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8-28 22:23
┃농촌 어린이 시집┃ 일하는 아이들 고침판/보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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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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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어린이 시집┃ 일하는 아이들 고침판/보리/2002 차례 고침판 머리말 초판 머리말 그림에 대하여 제1부 고추밭 매기 제2부 청개구리 제3부 길 제4부 조그만 구름 제5부 새눈 고침판 머리말 오랫동안 벌렸던 이 책의 고침판을 이제야 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부터는 지난날에 철없이 쓰고 엮고 하여 내었던 몇십 권이나 되는 부끄러운 책들을 언제 다 고쳐서 낼까 하고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마음으로 있었는데, 이번에 가장 먼저, 아이들이 쓴 이 시집부터 새로 내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을 20여년 만에 고침판으로, 다른 어느 책보다도 먼저 내게 될 까닭을 몇 가지 말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이 책은 바로 제가 쓴 글로 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쓴 어느 책보다도 더 소중하세 여겨 왔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쳤지만, 한편으로 이 아이들한테서 참된 시를 배웠습니다. 그 동안 책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더구나 자연과 시를 아주 잃어버린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 시집이 다시없는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 초판 머리말 끝에는 ‘겨우 이 정도의 빈약한 열매밖에 거두지 못했다’고 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유와 사랑을 가르치는 교육 동지들이 있는 골짝마다 마을마다 더욱 풍성한 열매가 거두어질 날이 올 것을 믿’고, ‘이런 소원이 이뤄지는 날 이 책은 불태워 버려도 좋을 것’이라 썼는데, 이런 말은 그 때 제가 가졌던 심정을 정직하게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물 몇 해가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과 시를 살펴보면 그 무렵의 강태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학교 교육의 알맹이란 것이 거의 바뀌지 않은 때문이고, 그래서 아이들이 오염된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서 쓰고, 어른들의 글을 흉내 내어 쓰는 정도가 더욱더 나쁜 상태로 떨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에 태워 버려도 좋겠다는 이 시집이, 이제 와서도 그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모든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시를 가르치는 교재가 되겠다고 생각한 까닭이 이러합니다. 다음은, 이 시집을 지금 읽어 보니 이 아이들이 얼마나 깨끗한 우리말을 썼는가를 깨닫게 되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그 때 농촌에서 산마을에서 살던 아이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 넉넉한 우리말로 자라났구나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이 시집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속절없이 잃어버리고 있는 수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한 우리말의 교과서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초판 책이 나온 뒤로 그 책에서 잘못된 것이나 모자란 것을 다듬고 바로잡아야겠다고 깨달은 것이 많았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늘 꺼림칙하게 여겨 왔습니다. 이 고침판에서 다듬고 고치고 한 것을 다음에 들어 봅니다. (ㄱ) 많이 붙여 놓았던 작품의 해설이 거의 모두 공연히 쓴 말이고, 도리어 시를 읽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꼭 참고가 될 말이 아니면 죄다 없앴습니다. (ㄴ)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말 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알 수 없는 말이나 사전에 없는 말을 풀이해 놓은 것도 흔히 하는 대로 사투리를 표준말로 바꾸어 적는 꼴로 하지 않고, 한 가지 말이 곳에 따라 다르게 여러 가지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ㄷ) 제가 지도하지 않았던 작품이 한 편 있었는데, 그것을 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쓴 시의 원문을 찾아내어 잘못 옮긴 말이나 잘못 적힌 글자를 더러 바로잡았습니다. 물론 맞춤법은 오늘날 쓰는 대로 고쳤습니다. (ㄹ) 128쪽의 ‘고속도로’는 초판에 실리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글쓰기와 발표의 자유가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더한층 제약되었던 그 시절에 우연히 얻게 된 이 시를 발표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30년도 더 지난 이제야 이 자리에 넣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새삼 생각되는 것은, 그 무렵 내가 지도한 글쓰기의 글감과 내용이, 아이들의 눈과 귀로 얼마든지 보고 듣게 되고 몸으로 겪게 되는 사회의 온갖 문제를 거의 모두 제쳐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집을 그런 눈으로도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이 ‘고속도로’는 어쩌다가 발견한 귀한 작품입니다. 이 밖에도 이 고침판에서는 본문의 글자 크기를 좀 키우다 보니 쪽수가 너무 늘어나서 작품 7편을 줄였습니다. 그림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좋은 책은 그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힘이 솟아난다고 합니다. 나도 그런 책을 한 권쯤 내어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내 딴은 온갖 정성을 다 들여서 만든 것이 이 《일하는 아이들》 고침판입니다. 어디 한 군데, 한 글자라도 잘못된 데가 있으면 부디 누구든지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꼭 고치겠습니다. 2002년 4월 이오덕
초판 머리말 -교사와 부모를 위하여 이것은 주로 농촌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면서 모아 두었던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는 공부를 잘한 아이들의 것도 있지만 오히려 못했던 아이들의 것이 많고, 흔히 뒤떨어졌다고 천대를 받은 아이들이 겨우 글자를 익혀 몇 마디씩 써 놓은 것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보인 것이 아마 절반은 될 것이다. 사투리를 설명한 것 외에, 붙여 놓은 해설 같은 것은 안 읽어도 좋은 것이다. 이 시집을 펴내는 뜻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시를 알고 시를 쓰면서 사람답게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음 또 하나는 교사와 부모들이 순진하고 정직한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과 함께 시의 세계에서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교과서를 가지고 시험 점수 따기 공부만을 하기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는데다가 글짓기까지도 상 타고 이름 내기 위해 하는 거짓스런 말재주놀이가 되어 있다. 더구나 괴상한 동시란 것을 쓰면서 남 따라 흉내를 내고 거짓을 꾸미는 말장난을 좋은 공부로 배우고 있어 그 마음이 비뚤어지고 병들어 사람답지 못하게 자라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참된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되찾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들의 느낌과 생각을 정직하게 쓰는 일이다. 남의 화려한 모습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아이들이 순진한 눈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아무런 재주도 부리지 말고 자신의 말로 그대로 쓰도록 했던 것이다. 농촌 아이들이 정직하게 자기를 나타낸 결과는 그것이 일하는 생활의 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집에서는 편안하게 놀면서 살아가기 위해 점수 따기 공부만을 하거나 상 타기 동시 짓기를 하는 아이들의 머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실제 느낌과 삶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아이들은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당연한 자기의 생활로, 오히려 자랑스럽게까지 여기고 있다. 그러기에 바로 일한 것이 아니더라도 걱정스런 생활 얘기를 쓰든지 산이나 구름을 본 느낌을 쓰든지 놀이를 쓰든지 그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살아 있는 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의 시는 어린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겪은 것을 그대로 정직하게 쓴 것이다. 그런 것이 시가 될 수 있는가 못 되는가를 이 시집은 말해 줄 것이다. 순진한 어린이의 말과 행동, 느낌과 생각은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린이는 시인임을 나는 믿는다. 어른들 때문에 더럽혀지고 비뚤어진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암담해짐을 어찌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아이들의 시를 대하게 되면 비로소 그곳에 하늘이 탁 틔어 옴을 느낀다. 아무리 짓밟히고 짓밟혀도 아이들은 끝까지 병들어 버릴 수 없다는 것, 어린 것들의 생명력은 민족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으로 엄연히 살아 있게 됨을 느낀다. 남북의 분단이 아무리 오래 가더라도 실망할 것 없다. 아이들이 시를 쓰면서 사람답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우리의 머리 위에 태양은 언제나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시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상태에 있으며 이렇게 언제나 첫 단계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지없이 참되고 아름다운 시의 세계를 지닌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는 내가 서른 해 동안 겨우 이 정도의 빈약한 열매 밖에 거두지 못했다는 것은 다만 무능한 탓이다. 그래도 이 보잘것없는 씨앗이나마 땅에 묻혀 썩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끝내 흐려질 수 없는 눈동자 빛나는 모든 어린이들과 그 어린이들에게 자유와 사랑을 가르치는 교육 동지들이 있는 골짝마다 마을마다 더욱 풍성한 열매가 거둬질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소원이 이뤄지는 날 이 책은 불태워 버려도 좋을 것이고 나 또한 동지들의 꾸짖음과 격려로 더욱 열심히 그들을 따라갈 것이다. 1977년 12월 이오덕 촌 안동 대곡분교 2년 김종철 우리는 촌에서 마로 사노? 도시에 가서 살지. 라디오에서 노래하는 것 들으면 참 슬프다. 그런 사람들은 도시에 가서 돈도 많이 벌일 게다. 우리는 이런 데 마로 사노? (1969년 10월 6일)
* 마로 : ‘머 하로’를 줄일 말. 머(뭐․무엇) 하러. 뭐 할라꼬. 무엇 때문에. * 산골에서 언제나 땅을 파고 무거운 짐을 져 날라야만 보리밥, 감자밥이라도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이런 아이들에게는 라디오의 즐거운 노래 소리가 슬프게만 들린다. 그런 즐거운 노래는 먼 남의 나라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도저히 저들로서는 가까이할 수 없는 것. 들으면 들을수록 자기들의 처지가 더욱더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데서 살아야 하나? 도시에 가서 살지. 그러나 도시에 가서 산들 어찌하겠는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거기서도 고난을 받겠지만 이 아이는 그런 것까진 모른다. 그저 고생스러운 산골을 벗어나 즐거운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요즘 아이들은 도시 생활을 한층 더 부러워할 것이다.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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