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8-29 16:17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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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우는 아침/종로서적/1987 차례 머리말 버찌가 익을 무렵 종달새 우는 아침 가을바람이 실어온 편지 수만이의 병 글짓기 시간 밤중의 교실 현수의 나팔 동시 학교 꿩 한낮에 일어났던 일 길 첫날 산 싸움 수천이 개 이야기 북술이 해설
머리말 여기 참 보잘 것 없는 이야기책을 문학이란 이름으로 어린이 여러분 앞에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재주가 이 정도밖에 못되니 부디 용서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말이 있으면 누구든지 언제라도 지적해 주셔요. 나는 아직도 어린이들에게 배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70년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 뒤 몇 해 안 가서 다른 글(평론)을 쓰는 데 마음을 기울이다 보니 지금까지 썼다는 이야기글을 모조리 모은 것이 겨우 이렇습니다. ka으로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동화집 같은 책을 낸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전에 썼다가 하도 부끄러운 글이라 발표도 안하고 내버려 두었던 것들까지 다 묶어 내는 뻔뻔스런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마다 끝에 그 글을 쓴 연도가 적혀 있으니 참고해 주셔요. 또 책 끝에 해설을 간단히 붙여 두었습니다. 그 해설을 먼저 읽어도 좋겠습니다. Ⅰ부는 72년에서 74년 사이(‘밤중의 교실’만은 82년)에 쓴 작품들이며, 거의 모두 어린이들의 학교 생활의 문제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제Ⅱ부는 대체로 산골 어린이들의 얘기를 쓴 것입니다. 모두 70년에 썼는데, ‘첫날’만은 72년에 썼으나, 이 얘기 역시 70년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Ⅲ부는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쓴 글들입니다. 이 책의 작품들은 글의 갈래로 볼 때 역시 동화가 많지만, 소설도 있고 실화도, 수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글의 갈래로 작품들을 나누어 놓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작품이 소설이냐, 동화냐, 혹은 실화냐, 수필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중요한 것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절실한 얘기가 되어 있는 가 아닌가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훌륭한 글을 읽어도 깨닫는 것이 없지만 총명한 사람은 보잘것없는 책을 읽어도 큰 가르침을 얻는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세상을 바로 보는 흐리지 않는 눈을 가지게 되고, 참되게 살아가는 용기를 얻게 되고, 자기의 삶을 발견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여 적이 되는 일을 그만 두고, 모두가 손잡고 서로 도와 가면서 즐겁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크나큰 문제를 푸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면, 그런 슬기로운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글을 못 쓰면서 욕심만을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린이 여러분인 하늘나라에 갈 특별 여권을 얻어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1986년 12월 이오덕
가을바람이 실어온 편지 현수는 일어나자 곧 세수를 하러 우물가로 갔습니다. 장마가 개인 아침이라 하늘은 한결 푸르고 맑았습니다. 담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하도 시원해서 저도 모르게 “야, 가을이 온 것 같네!” 하고 소리치고 나니 정말 가을이 가슴 속으로 가득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현수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대야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앉아서 두 손을 대야 물에 담그려고 하는데, 눈앞에 무엇이 지나가는 듯하더니, 그것은 조그만 소리를 내고 대야 물 위에 떨어졌습니다. 노란 버드나무 잎이었습니다. 샛노란 바탕에 초록색 엽맥이 가느다란 핏줄로 그려져 있는 버들잎. 벌써 잎이 지는구나! 다른 나뭇잎들은 아직 싱싱 푸른데, 버들잎은 어째서 남 먼저 단풍지는가? “버들잎아, 너는 왜 벌써 떠나니? 오늘 아침 내게 와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버들잎은 그렇다는 듯이 몸을 약간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현수는 문득 대야 위에 드리워진 제 손이 버들잎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참 재미있는데!” 현수는 일어서서 두 팔을 위로 뻗치고 손을 쭉 펴 보았습니다. 나무의 흉내입니다. 그리고, 두 손을 팔랑팔랑, 무용할 때처럼 흔들어 보았습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양입니다. “이거 참 재미있는데! 올가을 학예회 때는 ‘나무의 춤’이란 것을 추어 볼까? 나무가 하늘을 바라보고 우줄우줄 추는 춤. 그리고 비바람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손에 가지를 꺾이고, 잎을 쥐어뜯기고, 가슴에 못이 박히고 하면서 몸부림을 치고 괴로워하는 나무의 춤! 꼭 한번 그것을 추고 싶구나!” 현수는 하늘을 쳐다보고 또 한번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나니, 온톤 세상이 확 틔어지는 듯하였습니다. 지붕 위에서 지껄이는 참새들의 얘기가 바로 귀 곁에서 들려 왔습니다. “참, 버들잎이 할 말이 있다 했지. 버들잎아, 무슨 좋은 얘기라도 있니? 어서 말해 줘.” 현수는 방으로 달려가 수수깡 안경을 쓰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현수가 무슨 깊은 생각이나 재미있는 발견을 하고 싶어할 때 쓰는 안경입니다. 이상하게도 그것을 쓰면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한 생각이라든지, 건성으로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모양들이 환히 눈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현수는 나뭇잎을 들고 보았습니다. 커다랗게 확대되어 눈앞에 나타난 아, 그것은 놀랍게도 한 장의 편지가 아닙니까? 버드나무가 바람에 부쳐 보낸, 어린이에게 주는 버들잎 편이였던 것입니다. 현수는 즐거워 어쩔 줄 모르면서 그것을 읽었습니다.
착한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여러분, 나를 도와주셔요. 나를 살려 주셔요. 그리고, 세상의 거짓에 속지 마셔요. 나는 학교 교문 옆에 서 있는 버드나무입니다. 아침 저녁 여러분은 나를 쳐다보며 지나갑니다. 아니, 여러분은 나보다도 차라리 내 가슴에 달린 고운 빛깔의 조그만 새집을 쳐다보지요. 조그만 판자쪽으로 사람들이 사는 양옥집처럼 만들고, 다만 문만은 동그랑 구멍으로 뚫어 놓은 새집 말입니다. “저기 봐, 얼마나 고운 새집인다. 우리 학교의 자랑이야!” 여러분은 거의 모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앞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는 견딜 수 없습니다. 아파서 참을 수 없습니다. 내 가슴에는 깊숙이 못이 박혀 있습니다. 새집을 걸어 두기 위해 박아 놓은 그 못은, 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뽑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못은 내 가슴 소에서 녹이 슬어, 이제 나는 병들고 말았습니다. 머리 위에 하늘이 있어도 내게는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내 옷자락을 흔들어도, 새들이 내 어깨에 와서 울어도 나는 그것들이 귀찮기만 합니다. 나의 노래를 울음이 되고, 나의 춤은 몸부림이 되고, 나의 몸은 괴로움으로 비틀어졌습니다. 대체 그 누구를 위해 달아 놓은 새집일까요? 새들은 아무도 내 가슴에 달린 것을 저들의 집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이 아니면 일부러 새들을 위한답시고 보란 듯이 많은 사람들이 잘 쳐다보는 곳에 걸어 둔, 사람들의 거짓스런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보아라, 우리는 새들의 목숨까지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집을 지어 주고 있지 않는가, 하고요. 그러나, 어린이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슬기를 믿고 있습니다. “저깐 놈의 새집이 무슨 소용이란. 정 만들어 주려면 나뭇잎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 곳에나 숨겨 두어야지. 어느 바보 같은 새가 저걸 집으로 알고 들어간다더냐? 며칠 안 가서 잡혀 죽을 것이 뻔하지! 저런 걸 가슴에 달고 있는 버드나무는 슬플 거야. 아니, 그보다도 저기는 못이 박혀 있는데 얼마나 아플까? 못을 뽑아 주자!” 이렇게 말하고 나를 타고 올라와 가슴의 못을 뽑아 주는, kr하고 지혜와 용기가 있는 어린이가 반드시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아, 그 어느 어린이가 나의 소리를 듣는 슬기로운 귀를 가졌을까요? 나는 지금 온 정성을 다하여 쓴 이 편지를, 행여 읽어 줄 그 어느 어린이를 위해, 첫가을 바람의 우체부 편으로 날려 보냅니다. 1971년 초가을 어느 아침 교문 옆 버드나무로부터.
다 읽고 난 현수는 잠시 그대로 앉아 있더니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광으로 쫓아가더니 곧 노루발 장도리를 가지고 나와, 그대로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이른 아침의 학교 운동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수는 곧 버드나무를 타고 올라가 새집을 걸어 둔 못을 뽑았습니다. 찌익, 하고 못이 뽑혀질 때, 분홍색과 연두색의 페인트로 곱게 단장한 새집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새집 속에서 거미가 한 마리 슬슬 기어나와 어디론지 숨어 버렸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온 현수는 새집을 주워 들더니, 풀섶에 던져 버릴까 말까,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 이 새집은 버드나무의 편지와 함께 우리 선생님께 가져가서 의논하자. 버들잎 편지는 내가 다시 커다란 도화지에다 물감으로 그리고 쓰고 해서 보여 드려야지. 어른들은 이런 버들잎 편지를 그대로 읽어 내지 못하거든! 그리고, 동무들도 아직 아무도 이런 편지를 찾아 내지 못했을 거야! 오라, 새들의 편지도 내가 대신 써 볼까? 정말 재미있을 거야. 이 새집은 선생님께 부탁해서 우리 교실 앞 처마 바로 밑에 달아 놓았으면 좋겠다. 그리하면 새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현수는 이런 좋은 생각을 제가 할 수 있었구나 하고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971년) (p.30~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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