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6-26 01:13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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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참교육을 찾아서 2/이주영(서울 송파초) 이오덕은 평생 우리 겨레와 겨레의 어린이들이 참된 삶을 지키고 가꿀 수 있는 ‘참교육’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책 갈피갈피에 남겨놓은 참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고, 요즘 우리 겨레의 교육이 나갈 길을 짚어본다. 그 두 번째로 ‘참교육으로 가는 길(한길사,1990)’에서 교육운동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았다.
민주주의 뿌리를 심어야
나는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교육에 있다고 본다. 아이들 교육한다는 것이 군대식 훈련이 되어 있고, 민주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생각과 느낌을 가지도록 하고, 행동을 하도록 키우고 있는데 어떻게 민주사회가 되겠는가? 이것은 마치 씨를 뿌리지 않고 싹이 터 나기를 기다리고 열매가 맺기를 바라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오늘날 온갖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그 운동들이 모두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까닭은 모든 사람이 어려서부터 가정에서고 학교에서고 한번도 배우지 못하고 살아보지 못한 민주주의를 하자고 하니 어려울밖에 없다. 이것을 또 달리 비유해서 말하면, 비뚤어진 채로 자라나 아름드리로 된 나무를 이제사 바로 휘어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책으로만 배우고 머리로만 알면 다 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수월한가? 그것은 결코 지식으로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행하고 몸으로 창조하는 삶인 것이다.(참교육으로 가는 길 68) 한 교실을 영토로 가진 학급이야말로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교육의 자리다. 아무리 포악한 교육행정이라도 학급의 교육을 완전히 깔아뭉갤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담임교사가 아이들 편에 서서 참교육을 하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민주교육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온 나라의 젊은 교사들이 단결하여 행정 전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신명나게 외치고 있는 때가 아닌가. 오늘날같이 민주교육을 하기 좋은 때가 일찍이 없었다. 이때야말로 모든 선ㅅ갱님들이 민주학급을 만들고 민주학급을 만들어 이 땅에 요지부동한 민주주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해야 한다.(참교육으로 가는 길 69) 이 민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통일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민주의 삶을 몸으로 익히게 하는 것-이것 없이 우리 겨레의 교육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를 이 ‘민주의 삶’이란 초점에 맞추어야 한다. 교사는 민주의 삶을 지도한다기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민주의 삶은 ‘함께 살아가기’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국토와 민족뿐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갈라놓고 서로 미워하고 적이 되도록 하는 분단교육이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 혼자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비인간적 반민주 교육이었다. 이런 교육을 깨끗이 청산하고, 이런 교육으로 입은 해독을 풀어서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나는 지난날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를 가르친 교육자, 특히 초등학교 때 그들을 맡아 가르친 교사들은 그 교육의 책임을 절대로 면할 수 없다고 본다. 초등학교에서 단 1년 동안만 아이들을 맡아서 민주학급사회를 만들어 살아가게 한다면, 설혹 그 다음 해부터 좋지 않은 교사가 담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1년 동안에 얻은 귀한 삶의 체험은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살다가 죽을 때까지 그 삶을 바르게 지탱해 준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그런 반에서 배운 아이들 가운데서는 절대로 독재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깡패나 사기꾼도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교육의 힘은 이런 점에서 믿어도 좋으며, 교사가 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보람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참교육으로 가는 길 70)
1970년 대, 첫 발령을 받아서 교단에 섰을 때 나는 내가 돌아봐도 교육을 잘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넘치는 청년교사였다. 첫 담임을 맡은 학급 아이들이 86명이었는데, 첫 만남부터 실력있는 교사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지로 밤새 출석부를 달달 외웠고, 아침마다 교만에 찬 당당한 자세로 군인 점호하듯 큰 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아이들한테는 큰 소리로 ‘넷!’하고 벌떡 일어나 섰다가 나하고 눈을 맞춘 다음에 앉으라고 했다. 목소리가 작거나 일어나는 속도가 늦거나 일어서더라도 자세가 빳빳하지 않으면 호통을 치면서 다시 하라고했다. 또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수업을 끝낼 때마다 ‘전체-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하고, 안 되면 다시 시켰다. 나는 그때 그런 교육이 올바른 교육인줄 알았다. 그런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군대식 훈련이 밖에 안 되는데. 1980년 대, 나는 일기 쓰기 지도를 참 열심히 했다. 날마다 일기로 써야 할 글감 제목이나 주제를 내주고, 아이들이 오기 전에 일찍 학교에 가서 앉아 있다가 아이들이 들어오면 내가 먼저 활짝 웃으면서 ‘야, 종철이가 제일 일찍 왔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번 꼭 안아주면서 ‘일기 썼지?’하고 물었다. 공책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썼는가 보고, 종철이를 옆에 세워놓고 그 자리에서 읽고 더 써야 할 것이나 고쳐야 할 것을 지적해 주었다. 그러면 종철이는 자리에 들어가서 일기를 다시 써서 검사를 받았다. 그 가운데서 잘 쓴 일기, 내 눈으로 보기에 잘 썼다고 생각되는 일기를 두세 명씩 돌아가면서 앞에 나와서 낭송하였다. 60여 명 아이들을 날마다 그렇게 닦달을 했다. 나는 그때는 그런 교육도 민주교육인줄 알았다. 그런 일기 검사는 교육이 아니라 사생활 침해에 가까운데. 1990년대, 남들은 내가 무척 민주 교육을 잘 하는 교사인 줄 안다. 내가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고, 여기 저기 글을 써서 발표를 하니 그렇게 볼만도 하다. 사실 그건 민주교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고, 그 생각을 조금씩 흉내 내 본 것이지 정말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몸짓, 푹 담근 장처럼 맛깔나게 익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아직도 나는 좀 바쁘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낸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오셔서 학년에 생긴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 학년부장이 간 다음에 아이들한테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하게 된다. “교실에 손님이 오면 조용히 하자고 나하고 약속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떠들어요? 손님하고 이야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떠드니 정말 창피하고, 선생님하고 약속한 것을 이렇게 안 지키니 실망입니다. 실망.” 학기초에 이런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엄밀하게 되돌아보면 그건 약속이 아니라 교사의 권위로 아이들한테 강요해서 맺은 불평등 조약이 아닌가? 2000대, 내가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나보다 몇 배 더 굳센 의지와 열정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젊은 교사가 있다. 아이들하고 참 열심히 산다. 학급 현장체험학습도 다양하게 한다. 잘못된 학교 행정이나 지시에 대해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한다. 그것도 하나하나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해서 합리적으로 따지고, 대안을 제시한다. 학급에서 토의토론 활동도 열심히 한다. 참으로 믿음직하고, 희망을 느끼게 하는 교사다. 그래도 아직 온전한 민주 학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올해 3월을 시작하면서 아이들한테 내보낸 글을 보니 (우리교육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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