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6-26 01:00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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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책 이야기 1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청년사, 1977.
1. 여는 글 이 책은 1977년 5월 19일 초판을 냈고, 같은 해 7월 20일 재판을 낸 책이다. 나는 재판 본을 갖고 있다. 그 다음에 몇 판을 더 찍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제 1부는 1974년 2월부터 약 1년 동안 〈여성동아〉에 연재했던 것이고, 제 2부는 10여 년 전부터라고 했으니 196d년대 말부터 1977년까지 여러 곳에 썼던 글 가운데서 교육에 관계된 수필을 가려낸 것이다. 2차 대전 때 폴란드의 한 교육학자가 그가 데리고 있던 기숙사 아이들이 나치스 집단 학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자 ‘아이들을 1분간도 방치할 수 없다’면서 자기를 구조해 주려는 손길도 뿌리치고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함께 끌려가 학살당했다는 사례를 들면서 그 학자의 백분의 일의 양심이라도 가지고서 이 글을 썼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죄스럽다는 비장한 마음을 토로하였다. 과연 이 책이 나온 지 사반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사는 땅은 어떤지 돌아보면 볼수록 마음이 무겁고 부끄럽고 죄스런 일이다. 제 1부에 실린 11편의 글은 ‘참교육으로 가는 길/한길사,1990’에 옮겨 실었다. 몇 가지 한자말을 우리말로 바꾸고, 제목을 조금씩 고쳐서 냈다. 우리 아이들이 처한 교육 문화 전반에 걸친 비평이며, 우리 아이들이 사는 땅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2. 주요 내용 1)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1) 노래를 잃은 아이들 9~17쪽 문 제 어린이들이 부를 노래가 없어 유행가만 흉내내고, 부모와 교사와 사회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나갈 길 어린이들 생활에 맞아 즐겨 부를 수 있는 좋은 노래를 만들어 널리 보급해야 한다. 주 요 내 용 요즘 아이들은 노래가 없이 자라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특별히 음악 지도에 힘쓰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의 항의를 받을지 모르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봐서 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교과서의 노래를 버리고, 대신 어른들의 유행가를 부르면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자나깨나 듣고 있어야 하는 유행가 세상이기 때문이다.(13쪽) 그런데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는 것은 부를 노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 견 요즘 유행가는 더욱 아이들 생활과 거리가 먼 성욕과 사랑과 다툼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백창우나 고승하 같은 분들이 아이들 생활을 표현한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일에 더욱 힘을 실어 줘야 하겠다. 선생님이 어린 시절 교회 주일 학교에서 ‘고향의 봄, 반달, 집보는 아이’같은 동요를 많이 배웠는데, 우리 말과 정신을 보전해 가지도록 하여준 참으로 고마운 곳이라고 하셨다.(12쪽) 이 노래들은 방정환을 비롯한 당시 어린이 문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만들어 몰래 보급하였던 것이다. 선생님도 그 씨앗을 가슴에 받아 담아 키우셨음을 알 수 있다. 어린이 문화의 중요성을 또 다시 느끼게 하는 글이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선집에 넣으면 좋겠다. 2. 주요
2)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2) 교사의 비극 18~29쪽 문 제 우리 사회 풍토와 교육 현실이 교사로서의 귀한 재질을 타고난 사람조차 교사의 길을 올바로 갈 수 없게 하고 있다. 나갈 길 실적 위주의 겉치레 교육과 부패와 권력을 추구하는 교단 풍토를 바꿔야 한다. 주 요 내 용 .서로 다투어 가려고 하는 교통이 편리한 큰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인간적인 정을 맺어 참된 교육을 할 수도 없이 겉치레하는 일에만 정신을 들이는 것을 교육이라고 처음부터 알게 된다면 그것은 교사로서의 귀한 재질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크나큰 비극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19쪽) .문제는 교사의 할 일이 많다는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비극은 이렇게 많은일들을 제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시킴을 받아 하게 된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사역을 당하는 교사-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오늘날의 교사들이 매카니즘의 거대한 기계 속에 한 부속품이 되어 허덕이는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쓰는 교안, 너무나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영리한 교사들의 입신의 지혜가 되어 있는 이 사실에서 K교사는 오늘날 처해 있는 교사의 비극적 상황을 직감한 것이다.(21~22쪽) . 교원들이 부패했다면 세상이 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다만 사실의 은폐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이익이 될 수 없고 진정한 질서의 유지를 해치는 일이다. 새로운 교사의 길은 현실을 똑바로 보는 교사의 눈앞에서만 열려질 것이다.(25쪽) . 아이들을 착하고 바르게 키워가는 일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치고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교사의 운명이요 교사의 영광인 것이다. 그러니 교사라면 교사일 뿐이지 거기 무슨 계급이 있을 수 없다. 지금 막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도 교사요, 회갑이 지나 백발을 인 사람도 똑같은 교사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26쪽) 의 견 교육 현실의 세 가지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교사가 자기 본분을 지켜 나갈 길을 정확하게 보여준 글이다. 다만 1970년대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도시 사립 학교 교사의 수입과 공립학교 교사의 임금이 당시보다 편차가 적어졌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졌고, 직책 이름이 바뀐 것이 다를 뿐이다. 승진에 대한 욕구와 경쟁은 70년대보다 현재가 더 치열하다고 할 수 있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3)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3) 교육행사의 상품화 30~41쪽 문 제 상타기 위한 구연동화, 글짓기, 미술대회로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멸시하게 된다. 나갈 길 생활을 표현하는 말하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교육이 돼야 한다. 주 요 내 용 . 동화구연이란 교사가 아동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것을 시켜 놓고 무슨 대단한 재주라도 가르친 것처럼 보이려는 것은 상품으로 타락한 교육이다 그것은 원숭이에게 재주를 익혀놓고 구경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말하기 교육이라면 모든 아이들이 평소에 제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도록 온갖 기회를 이용하여 지도해야 한다. 특별한 말 잘하기 손수를 기른다고 이런 별난 훈련을 시키는 것은 그 특별한 아이들조차 병들게 하는 노릇이다.(32쪽) . 우리가 훌륭한 동화를 읽거나 듣고서 감명을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럴 때 우리들의 마음은 황홀한 즐거움이나 슬픔에 젖을 수도 있고, 조용한 생각의 세계에 잠길 수도 있다.~그런데 아이들에게 경연을 시키고 있는 동화대회는 어떤가? 여기서는 많은 관중들로부터 즉시로 나타나는 반응을 기대하게 된다. 그 결과 마음 깊이 스며드는 감명을 얻을 수 있는 동화다운 동화는 용납이 안 되고, 그 대신 내용 없는 웃음, 넌센스 같은 것이 환영받는다. 문학적인 가치로 봐서 저열한 동화가 여기서는 존중된다.~문학으로서의 동화는 여기서 모욕을 당한다. 동화가 교육의 수단으로 이렇게 비뚤어지게 이용될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해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위해 아이들이 한갓 도구로 되고 있는 것이니, 아이들이 이렇게 학대될 수 없다.(32~33쪽) . 아이들이 자기의 생활과 마음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공부가 된다. 그것은 단지 글 쓰는 재주를 익힌다든지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한다든지 하기 위함이 아니다. 보는 눈이 깊어지고 인식을 넓혀가게 한다. 그뿐 아니라 자기 생활을 확인하여 위안과 자신과 용기 같은 것을 얻게 되고 진실한 생활 태도를 몸에 붙이게 된다. 한편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의 글을 통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되는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인간 교육 방법이 없을 것 같다.(33쪽) . 국민학교의 미술 교육이 또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어느 학교에 가 보아도 교실마다 아이들 그림이 걸려 있지만 아이들의 생활이 나타나거나 감정이 살아 있는 그림이란 보기 힘들다. 거의 모드 교과서나 남의 것의 모방이다. 무슨 미술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작품들도 곱게 모양만 다듬은 것이 대부분이다.(39쪽) 의 견 이 글에서 비판하는 동화구연 대회는 70년 대 전후에 어린이문학단체에서 방정환 기념 사업을 하면서 어린이동화구연대회까지 만들어서 상당히 유행했던 행사다. 지금도 이런 행사를 하는 학교가 있고, 색동회에서 아버지 구연동화 대회, 어머니 구연동화 대회, 선생님 구연 동화 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그 행사 경향이 선생님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이들 그림에 풍경만 있고 살아있는 아이들이 없다는 비판 역시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문제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말하기, 글쓰기, 그리기 세 분야를 다루고 있어 선집에 넣어야 할 중요한 글이다.
4)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4) 벽지의 하늘 42~54쪽 문 제 벽지 교육의 문제점이 방치되고 있고, 벽지 교사들이 정체된 생활에 빠져 있다. 나갈 길 벽지 교사들이 정체된 생활에서 벗어나야 존경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주 요 내 용 산골 벽지 어린이들이 하루 12Km를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데도 학교장의 이기심 때문에 독립학교가 되기 어려웠던 실정에 분노하면서 또한 벽지 교사들이 독서보다는 술에 빠지게 되는 현실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러한 타성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글이다. 의 견 70년대 중반까지 이런 도서 벽지 분교장이 많았는데, 불과 15년 뒤에는 농어촌 인구가 줄어든 80년 전후부터는 독립학교를 분교장으로 격하시키거나 큰 학교로 통합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요즘은 차로 통학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걷는 문제는 없지만 통폐합 과정에 어린이와 주민의 뜻보다 교육행정가들의 편의주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 두밀학교 싸움이 그 좋은 사례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이와 주민들보다 관료들의 이기심과 편의주의로 결정된다는 문제가 똑같다. 벽지 교사의 문제 역시 벽지 어린이 교육보다는 승진 점수를 위해 지원하는 교사가 많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5)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5)겉치레 교육 55~66쪽 문 제 교육이 어린이보다는 다른 어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겉치레에 빠져있다. 나갈 길 모든 어린이를 위한 참교육을 해야 하며. 교육의 본질과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주 요 내 용 .교육이란 것이 정말 교육으로 되어 있다면 그야말로 백년대계인데, 백년 아니면 십년이라도 내다봐야 할 것을, 이건 당장 그 자리에서 나타나는 효과를 자로 재려고 하니 탈이다.(56쪽) .아이들이 청소 때문에 학교엘 다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그렇게 애를 써도 잘 안 되는 까닭이 있다. 줍고 쓸고 닦는 것만 야단쳤지, 청소를 안 해도 되도록, 종이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공중도덕심을 갖게 하는 정신교육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청소하는 아이들의 태도다. 집단생활에 대한 자각이나 협조란 것이 없고 철저하게 이기주의로 행동한다 여기에다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는 풍조마저 있는 것이다.(58~59쪽) .요즘 학교 교실이 모두 이렇다고 할 수 없지만, 이런 교실이 많고, 이런 경향의 환경정리를 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손님들을 위한 정리가 되었다.(63쪽) .이런 선수 양성 교육에 대한 구실이 있다. 그것은, 우수한 선수를 내어 상을 타고 이름을 낸 학교나 학급이 그렇지 못한 학교나 학급보다 역시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선수 지도의 기능이 있는 교사들이 그 지도 기술을 특수한 아동에게 한정해서 발휘함으로써 선수 아닌 다른 아동을 희생시키고, 또 그 특수한 아동들마저 정상이라 할 수 없는 길을 가게하지 말고, 모든 아이들을 위해 참된 교육을 해 주었으면 얼마나 더 아이들이 행복하겠는가 싶다.(66쪽) 의 견 사립학교에서는 청소를 너무 안 시켜서 문제고 공립학교에서는 너무 청소를 마구잡이로 시켜서 문제가 된다는 까닭을 분명하게 짚었다. 청소는 중요한 일이지만 교육의 본질과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청소 지도에 대한 좋은 방법을 연구·실천해야 하고, 그런 사례 발표해서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환경정리도 70년대와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정말 ‘학생이 바람직한 교육적 경험을 이룰 수 있도록 교실을 중심으로 한 학급 환경이나 사회 환경을 꾸미는 일’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선수 양성 교육 문제 역시 과거보다 많이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동시에 모든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교육 현실이 이 글을 쓸 때와 변화는 많지만 그 본질이 바뀌는 발전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길, 참된 교육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길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선생님 뜻을 제대로 이어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6)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6)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67~78쪽 문 제 농촌 어른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하부구조로 전락하여 극단의 이기주의로 흐르고, 아이들이 이를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나갈 길 아이들이 이런 어른들의 잘못을 흉내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 요 내 용 .마을 사람들은 새마을 사업한다고 지붕개량 하고 길을 닦느라 애를 쓰고 있다. 아이들은 애향단을 만들어 길가에 꽃을 심고 아침마다 줄을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학교에 간다. 이렇게 시키는 일은 하면서 스스로 자각해서 해야 활 일인 아무도 안 한다. 자기에게 직접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이기주의가 도사려 앉은 사람들의 마음 속은 유리 조각으로 덮여 있는 땅바닥같이 황폐되어 있는 것이다.(63쪽) .이 아이들은 저한테 직접 이익을 가져오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앞 뒤 볼 것 없이 어떤 일이고 감행한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잔인성으로 나타나, 강한 자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약한 자는 짓밟고 올라선다.(71쪽) . 식물과 동물을 상대로 할 때 나타나는 아이들의 잔인성은 같은 인간을 대할 때도 나타나고 있다. 바깥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면 정신박약에 가까운 아이를 여러 놈들이 둘러싸고 놀리고 있다. 하급생들에게 싸움을 붙여놓고 쳐라, 까라, 하고 응원하고 있는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서도 볼 수 있다.(73쪽) . 남의 것을 해치는 것은 예사로 알지만 제집 안에 있는 것은 나무든지 짐승이든지 물건이든지 아낀다. 다만 그것이 돈으로 쳐서 값이 나가는 경우다. 값어치가 없을 때는 비록 제것이라도 여지없이 버린다. 곡식이고 나무고 곤충이고 동물이고 사람까지 그 값을 돈으로 매기는 세상이 되었다.(75쪽) . 농촌 아이들이 생명을 참혹하게 죽이는 까닭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그런데 농촌 아이들은 예외가 없이 모두 부모들과 같이 들과 산에 가서 노동을 하고 있다. 이 노동은 식물과 동물을 기를 뿐 아니라 불행하게도 그것을 뿌리뽑고 혹사하고 죽이는 과정이 되어 있다.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을 약탈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 있는 농촌의 농민들은 〈농(農)은 천하의 근본〉이란 생각과 위치에서 아주 전락하여 상공업 중심으로 한 도시에 자연 자원을 긁어대고 잡아 모아 공급하는 일을 하기에 정신이 없다.(77쪽) .추악한 어른들의 행습을 아이들이 본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그런 짓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앞으로 몇 십년 후, 극단의 이기주의와 비뚤어짐 속에서 자라난 이 아이들이 참된 민주 사회를 창조하여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살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78쪽) 의 견 자연을 정복과 약탈의 대상으로 보는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7)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7) 도망쳐 가는 아이들 79~91쪽 문 제 도시를 동경해서 도망치는 아이들의 문제 나갈 길 도시 문명의 문제를 일깨워주면서 농촌의 삶이 즐겁다는 보람을 안겨 주는 교육 주 요 내 용 .욕설이 함부로 섞여 있어도 어쩔 수 없으니 아이들끼리의 말을 들어보고 싶다. 교사와 부모와 작가들이 이러한 진짜 아이들의 말을 들어 주는 데서 교육도 아동문학도 시작될 것 아닌가. 자치회장, 어린이회장이나 선도반장들이 교사의 훈화를 앵무새처럼 외우고 흉내내는 말만이 행세하고 있는 학교에서 진짜 아이들의 말과 생활은 추방되어 뒷골목과 들판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거기서 더욱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쓰는 글에 뒷골목과 들판의 말이 나오지 않는 이상, 아동문학 작품에 아이들이 살아 있는 생활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교육과 문학은 백년을 가도 진짜 노릇 못할 것이다.(80쪽) . 의 견 농어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과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8)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8) 학부모들 그 극성 풍조 92~104쪽 문 제 가정 방문, 소풍, 운동회가 교육과 어긋나게 이뤄지는 사회 풍조의 문제 나갈 길 학교 교육을 지역 사회에 개방하는 길을 바르게 바꿔야 한다. 주 요 내 용 가정방문을 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을 보기로 들면서 농촌의 도시화를 짚고 있다. 정말 어린이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접받고 대접하는 풍조, 그 가운데 가난한 가정과 어린이들이 겪는 아픈 마음. 또 소풍이나 운동회 때 어른들이 술먹고 노는 문제를 짚었다. 자유당 정권의 폐해가 학교 사회까지 얼마나 피폐하게 하였는가를 알 수 있디. 의 견 농촌 모습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서울에서는 가정 방문이나 소풍이나 운동회와 관련한 이런 풍조는 없어졌다고 본다. 다만 아직까지 부조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지역 사회와 학교의 연대 방향은 고려할 점이 많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9)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9) 아이들 몰라주는 문학 105~117쪽 문 제 어린이 문학 작가들이 대상에 맞지 않는 어린 말을 쓰거나 또는 어려운 말을 마구 쓰는 문제 나갈 길 교사와 부모들이 훌륭한 작가의 좋은 작품을 찾아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정신의 양식을 공급하고, 한편 아동문학을 키우는 일에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117쪽) 주 요 내 용 .아이들을 키워가는 문제는 곧 아동문학의 문제가 된다.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맹목적으로 귀여워하며 기른 것같이, 문학인들은 맹목적으로 아이들의 세계에 빠져들어가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온 것 같다. 아이들을 자라나는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두렵고 놀랍고 때로는 사회에 물들어 병들기까지 하는 한, 살아 있는 생명으로 보지 않고, 어른에게 딸린 부속물로, 인형으로 보아온 것 같다. 그리하여 그 인형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어린애같이 되고, 때로는 어른의 기분으로 지껄이면서 홀로 만족해온 것 같다. 그러한 동요, 동시, 동화가 너무 많은 것이다. .아빠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8.15이전에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일반 아이들의 어휘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젖먹이 아이들의 말로 아빠 아빠 하는 것이었다. 해방후 이 말이 유년기 아이들의 말로 널리 쓰여지게 된 것은 어린애들을 귀여워하면서 같이 놀아줄 여유가 있었던 서울의 부모들에 의해서다. 이들은 어린애들의 혀짤배기 말을 귀엽다고 해서, 이미 그 때가 지나가버린 아이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젖먹이애들 의 말을 유년기까지 연장시키고 때로는 아동기에까지 연장시켰던 것이다. 말의 자라남은 곧 생각의 자라남이라고 볼 때, 이런 젖먹이애들의 말이 연장된다는 것은 정신의 발달을 늦추게 되는 비뚤어진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빠에서 아버지로 말이 옮겨가게 되는 아니는 대체로 도시 국민학교에서는 3,4학년 때이고, 농촌에서는 취학 전후이지만--(108쪽) .다음에 문제되는 것은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한자어나 외래어를 아무 조심도 없이 함부로 쓰는 작가가 적지 않다. 아빠란 말이 나오기에 이건 3학년쯤 재미있게 듣겠지, 해서 아이들에게 앍어 주다보면 어려운 말이 자꾸 나와 낱말 풀이를 해가면서 읽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거나 발을 구르거나 옆의 아이와 소곤소곤하고 있다. 흥미를 잃어버리고 안 듣고 있는 것이다.(116쪽) 의 견 .이 글을 보면 선생님의 언어관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언어는 정신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빠라는 말이 선생님이 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현재는 어른까지 거의 다 쓰고 있으니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언어 발달 과정을 고정된 규칙으로해석한다면 이런 현상을 사회의식 전체의 미성숙으로 보고 아버지로 쓰도록 해야 하고, 언어 발달 과정을 변화 가능한 것으로 본다면 아빠란 말이 어른들도 쓰는 말이 되었으니 3,4학년 이상 어린이들이 써도 정신 발달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어린이 문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이도서연구회와 같은 교사 학부모 단체가 필요함을 바라고 계셨다.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들 때도 이런 뜻으로 많이 격려하셨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주해를 달아서 선집에 넣을 필요가 있는 글이다.
10)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10) 정신교육의 부재 118~129쪽 문 제 어린이들이 잔인하고 욕쟁이가 되는데도 교원들이 이 아이들을 참되게 키워나갈 정신교육을 하지 않고 있는 문제 나갈 길 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글쓰기 교육으로 참된 어린이로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주 요 내 용 .모든 것을 긍정해 버리는 곳에 무슨 교육이고 문학이고 있을 수 있겠는가?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도 이미 이뤄진 문화를 전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야 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아이들의 현실을 천사의 세계로 미화하기만 하는 타락한 사이비 교육자나 작가들이야말로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119쪽) .인간이 무작정 산천의 초목을 뿌리뽑고 베어 넘기고, 생물을 잡아 편리한 대로 이용하기만 하면서 도시 중심의 과학문명을 만들어 살아갈 때, 그리하여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이 멸망해 갈 때, 도대체 인간과 송충이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122쪽) .자동차와 빌딩이 없이는 살 수 있지만 풀과 나무가 없고서는 결코 살아갈 없는 것이 인간이다. 짐승이나 곤충을 살해하는 것뿐 아니라, 풀이나 나무도 이유 없이 꺾고 베고 하는 것도 커다란 죄악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123쪽) .교사들은 엉뚱한 일에 쫒기고 있고, 그리고 그들의 관심이 일반적으로 교육적이라고 할 수 없는 데로 향하고 있으며, 대체로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교장 교감 또한 학교의 외모를 갖추는 일에만 마음을 쓰고 있다. 전체 교원들이 어떻게 하면 교육을 잘할 수 있는가? 참된 어린이로 키워갈 수 있는가? 하는데 마음 쓰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교육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가? 학교나 학급이나 개인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가? 하는 태도로 근무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교직원이 합심협력해도 어려울 정신명의 지도가 이렇게 하여 실상은 거의 공백상태에 놓여 있다면 이것은 중대한 교육의 위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126쪽) 의 견 이러한 문제는 현재도 여전하고, 오히려 더 심각해 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현재의 사례를 찾아서 알릴 필요가 있다. 선생님의 주장은 옳지만 선생님이 보기로 든 사례로 요즘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요즘 사례를 찾아서 선생님 생각을 더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생님은 교장으로서 교사들한테 글짓기 교안까지 만들어주면서 부탁했지만 따르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글짓기 지도한 결과물을 내라고 했더니 담임 교사가 한번 읽어보지도 않은 아이들 글을 무더기로 내 놓았는데, 쓰레기 같아 결국 두 번 하고 포기했다고 한다. 그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행정 명령이나 실적 위주 결과물로는 펼칠 수 없으며, 참교육은 결국 교사들이 스스로 깨달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교사들을 어떻게 깨어나게 할 것인가? 스스로 이런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할 것인가?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바꿔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 실천해야 한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11) 책 제목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77. 5.19. 초판, 7.20. 재판 글 제목 제1부 (11)촌 사람, 도시 사람 130~146쪽 문 제 도시 사람들이 촌사람을 멸시하고, 촌사람들이 도시병에 걸린 문제 나갈 길 역사를 투시할 수 있는 젊은 지성인이 필요하다. 주 요 내 용 .나는 농촌에 대한 도시의 상위적 위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이제는 도시와 농촌의 위치와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파악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133쪽) .현대문명을 다시 원시시대로 뒷걸음쳐 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물질문명을 전혀 다른 각도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도시 자체의 구원은 물론이고 도시화된 농촌의 구제도 있을 수 없고, 전체 인간이 살아갈 길은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도시적인 생활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그 눈으로 시골 사람을 가엾게 바라보고, 그런 자세로 무엇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여기에 있다.(141) 의 견 선생님은 위에 인용한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을 자세히, 정말 눈에 보이듯이 사례를 들면서 자세히 쓰셨다. 그런데 역시 그 사례가 현재에는 지나간 과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자먀결연 사례가 그렇다. 당시 70년대 전후로 도시학교와 농어촌 학교 자매결연이 많았으나 현재는 그리 많지 않다. 또 대학생 농촌 봉사 역시 아직 그런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는 사례들이 있지만 선생님이 쓰신 이 글이 나오고나서 80년대 농활 방향이 봉사라는 개념보다 현실을 배우자는 마음과 수련이라는 쪽으로 바뀍 위해 노력했었다. 나는 요즘 농활은 어떤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농촌 선생님들한테 알아봐야겠다. 실렸던 다른 책 여성 동아, 참교육으로 가는 길 참 고
3. 닫는 글 이 책 1부를 바쁜 시간에 쪼개서 읽으면서도 내가 얼마나 선생님 뜻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나와 내 삶 속에 선생님이 가르치신 생각이 얼마나 소중한 씨앗으로 자리잡고 있었나를 정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옳다고 여긴 많은 생각들이 선생님 글 속에 담겨있었는데, 선생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으로 배우고 깨달은 것인데 마치 내 혼자 알게 된 것처럼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맨 처음 이 책을 밤새 읽으면서 당시 우리 교육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셨기에 나도 모르게 ‘맞아, 이 말씀이 맞아’하면서 놀라워하고, 흥분하고, 분노하였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돌아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이나 교실에서 아이들한테 힘써 교육하는 많은 일들이 거의 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깨들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지금 교사들이 읽는다고 했을 때 그 당시 나처럼 ‘정말 우리 교육 현실이야. 우리 사회 모순이야’하고 공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주장하시기 위해 사례로 든 이야기들이 모두 선생님 개인의 삶에서 나온 것인데, 그 가운데는 30-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현실이어서 공감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과반수는 달라진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정방문이나 자매결연같은 사례를 요즘 도시 교사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벽을 어떻게 넘어서 선생님 뜻을 알릴 수 있는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옛날 선비들이 많이 활용했던 ‘주해 편찬’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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