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6-26 01:07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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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참교육을 찾아서 6/이주영(서울 송파초) 이오덕은 평생 우리 겨레와 겨레의 어린이들이 참된 삶을 지키고 가꿀 수 있는 ‘참교육’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쓴 책 갈피갈피에 피어있는 참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고, 요즘 우리 겨레의 교육이 나갈 길을 짚어본다. 그 여섯 번째로 ‘참교육으로 가는 길’(한길사, 1990)’에서 말하기 교육에 대한 생각을 찾아보았다.
아이들은 온갖 방법과 모양으로 자기표현을 한다.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 연극하는 것, 토론을 하는 것이 모두 자기표현이다. 싸움도 표현이라고 볼 수 있고, 고함치거나 우는 것도 다 자기표현이다.(사람의 맨 처음 표현은 울음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두루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교육에서도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말하기와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세 가지다. 연극도 좋은 표현 방법이지만, 아직도 연극교육을 널리 논의할 만큼 우리 교육이 나아가 있지 않다.
표현에서 세 가지 큰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말하기 · 그리기 · 글쓰기 중에서 말하기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사람은 말로써 가자 자세하고 깊은 생각, 개성적이고 오묘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생각은 말로써 이뤄져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말은 가장 널리 쓰는 표현 수단이 되어 있고, 울음과 몸짓 다음으로 가장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되어 있다. 따라서 말의 교육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가정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집에서 하는 듣기 중심의 말 교육이 옛날과는 아주 달리 버림 받고 있거나 잘못되어 있다.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고향의 말을 들려줄 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을 마주 보지 않고 돌아앉아 텔레비전 화면에 눈이 가 있고, 거기서 들리는 앵무새 같은 말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듣게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없어졌다.
학교에 들어가면 말하기 교육은 한층 비참하다. 아이들이 1학년에서 부터 말하기보다는 글자 쓰기에 온 힘과 정신을 들여야 한다. 공부하는 차례가 ‘듣기→말하기→읽기→쓰기’, 이렇게 되어야 할 터인데, 거꾸로 쓰기부터 시작해서는 그만 쓰기로 끝나버리는 것이 지금의 국어교육이다.(참교육으로 가는 길 97-98)
교사 초임 때였다. 우리 반은 날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수업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어떤 반은 항상 조용했다. 어떻게 조용한가 보고 깜짝 놀랐다. 교사는 수업 시작부터 백묵가루를 흩날리면서 칠판 가운데 세로줄을 죽 그어 둘로 나눈 다음에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빽빽하게 글을 쓰면 어린이들은 죽어라고 공책에 베껴 쓰느라 떠들 시간이 없다. 칠판 하나 가득 다 쓰면 왼쪽을 지우고 다음 글을 써 내려가니 교사와 거의 같은 속도를 따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따라 해보니 정말 아이들이 숨소리도 죽이고 따라 썼다. 그러나 나는 그런 수업을 계속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부할 내용을 칠판에 쓰고, 아이들이 따라 쓰게 하는 수업보다 더 편한 수업 방법이 있었다. 국어 책 몇 쪽부터 몇 쪽까지 글자 한자 안 틀리게 공책에 옮겨 쓰게 하는 방법이다. 사회 시간에는 사회 책에 나오는 도표나 그래프까지 그대로 옮겨 쓰게 한다. 조금 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교사는 책에 나오는 문장을 불러주고 받아쓰게 하는 것이다. 1학년 초기부터 하루에 몇 장씩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채점한다. 이렇게 글씨를 쓰는 동안은 아이들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말이 없는 교실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교실이다.
요즘은 칠판을 대신하는 것, 교과서를 대신하는 것이 교실마다 버티고 앉아 있다. 컴퓨터와 실물화상기와 대형 텔레비전이다. 아이들은 살아있는 선생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커다란 기계 상자 앞에 앉아서 기계로 녹음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 쇳소리가 묻어나는 죽은 소리를 듣고, 교사가 책상에 앉아서 조작하는 대로 화면에 떴다가 사라지는 내용 베껴 쓰기에 바쁘다. 한 방향으로 앉아 텔레비전만 보는 집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집이 필요하듯이, 숨죽이고 교과서나 칠판 글씨를 공책에 옮겨 쓰는 교실이 아니라 교사와 아이들이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교실이 필요한 세상이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컴퓨터 게임하느라 방까지 따로따로 먹은 집보다 하루 한 끼라도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하면 밥 먹는 집이 더 필요하듯이, 기계 소리보다는 교사와 아이들이 살아있는 자기 목소리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실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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