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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6-09-06 15:38
    우리글 바로쓰기/한길사/1989
     글쓴이 : 이주영
    조회 : 1,864  
    우리글 바로쓰기/한길사/1989
    차례
    머리말
    들어가는 말
    제1장 한자말에서 풀려나기
     1. 한글로 썼을 때 그 뜻을 알 수 없거나 알기 힘드는 말
     2. 입으로 말했을 때 그 뜻을 알아듣기 힘드는 한자 말
     3. 문자쓰는 말과 글에서 벗어나야
     4. 공연히 어렵게 쓰는 말글
     5. 많이 쓰는 한자말도 더 정다운 우리말로
     6. 우리말을 파괴하는 한자말투
     7. 틀리게 쓰는 한자말
      (1) ‘한자말+하다(차다)’로 쓰는 경우
          기초하다․기반하다․근거하다․위치하다․웅변하다․결실하다․이름하다․기능하다․
          자유하다․가열차다
      (2) 겹말
      (3) ‘일절’인가 ‘일체’인가?
      (4) 잘못 쓰는 하임움직씨‘-시키다’
    제2장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
     1. 우리말을 파괴하는 일본 말글
     2. <지다><되다><되어지다><불리다>
     3. <에 있어서>
     4. <의>
     5. <와의>(과의)
     6. <에의>
     7. <로의>(으로의)
     8. <에서의>
     9. <로서의>(으로서의)
     10. <로부터의>(으로부터의)
     11. <에로의> 그 밖
     12. <에게서>
     13. 그 밖에 필요없이 겹치는 토
     14. <보다>(토씨를 어찌씨로 잘못 쓰는 경우)
     15. <다음 아니다>와 <주목에 값한다>
     16. <의하여>
     17. <속속><지분><애매하다>
     18. <수순><신병><인도><입장>
     19. <미소><미소짓다>
     20. 그 밖의 일본말들
        축제․납득․옥내(옥외)․세면․천정․하치장․상담․거래선․승합차․수속․취입․조기청소
        ․수취인․입구․할증금․치환․일응․담합
     21. <그녀>에 대하여
    제3장 서양말 홍수가 졌다.
     1. 이 땅에서는 서양사람들도 우리말을 해야 한다
     2. 영어문법 따라 쓰는 ‘-었었다’
     3. 쓰지 말아야 할 말
     4. 들온말 적기
     5. 잡지 이름, 상품 이름
    제4장 말의 민주화(1)
     1. 이야기글의 역사
     2. 벼슬아치의 말과 글
     3. 땅 이름, 마을 이름
     4. 일제 말, 군대 말
     5. 강론 말
     6. 방송 말
     7. 글말
     8. 사람 가리킴 말
     9. 높임말
     10. 준말
    제5장 말의 민주화(2)
     1. 말과 생각의 관계
     2. 잘못 쓰는 말
     3. 아름답지 못한 말
     4. 농민의 말
     5. 일제시대․북한․중국연변의 말
    제6장 글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
     1. 아이들의 글쓰기와 어른들의 글쓰기
     2. 농민문화 창조를 위한 글쓰기
     3. 우리 말 속의 일본말
     4. 우리 말, 어떻게 살릴까?

    머리말
     말을 마음대로 마구 토해 내는 사람, 그렇게 토해 내는 말들이 모두 살아 있는 구수한 우리말이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말에서 비로소 잊었던 고향으로, 우리의 넋이 깃들인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어렸을 때 배운 고향의 말을 참 용이하게도 잊어버리지 않고 빼앗기지도 않고 잘도 가지고 있구나 하고 한없이 부러워진다.
     우리는 누구든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로부터 평생을 쓰게 되는 일상의 말의 대부분을 배웠다. 그러나 학교란 곳에 들어가고부터는 집에서 배운 말과는 바탕이 다른 체계의 말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부모한테 배운 말을 부끄럽게 여기고 잊어버리게 하는 훈련을 오랫동안 받았던 것이다. 학교뿐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그랬다. 나 개인이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렸을 때 배운 모국어를 학교와 사회에서 끊임없이 빼앗기고 또 스스로 짓밟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나이가 60이 훨씬 넘은 이제 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우리 겨레 전체를 보아도 그렇다. 지난 천년 동안 우리 겨레는 끊임없이 남의 나라의 말과 글에 우리 말글을 빼앗기며 살아왔고, 지금은 온통 남의 말글의 홍수 속에 떠밀려 가고 있는 판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이 나라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일조차 아예 그만두었다. 날마다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거기서 들려오는 온갖 잡탕의 어설픈 번역체 글말을 듣고 배우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농민들이 모인 어느 자리에서 그곳 사투리로 된 옛이야기를 읽어준 일이 있다. 바로 『한국 구비문학 대계』에 나온 이야기다. 이거야말로 진짜 우리말이고 우리 얘기다 하고 무릎을 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러나 내가 읽기를 마치자마나 농민들은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요!” “존 유식한 문학 얘기를 해 주세요!”하고. 나는 그 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농민들만은 살아 있는 우리말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온 나라의 지식인들, 글 쓰는 이들이 모두 외국말법으로 외국말 직역한 말투로 ‘유식하게’ 쓰고 말하고 하니 농민들의 말도 아주 뿌리가 뽑혀버린 것이 당연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이제 어떤 일인데 포기하다니! 그리고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아직도 글이 아니라 말로―글의 해독을 입지 않은 말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또 어린 아이들의 말은 그래도 덜 더럽혀져 있다.(그러나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말도 급속하게 오염될 것이다. 아이들의 말을 바로잡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없다.)
     우리말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리시고 환히 내다보신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난 우리말을 교회에 나오는 할머니들한테서 배웠어요.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나는 늘 신자들 가운데서 학교 공부를 못하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교를 하려고 애썼지요. 그러다보니 우리말이 어떤 말인가 깨닫게 되었어요.”
     어떤 자리에서 식사를 하시면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그때 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
     “우리말은 동사(움직씨)를 많이 쓰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생각하니, 정말 내가 지금까지 신문이나 책에 나온 잘못된 글을 우리 말법으로 고쳐 놓은 것이 거의 모두 움직씨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얼마 전 문 목사님께서 보내 주신 편지글에서 우리말에 관한 말씀이 있어서 여기 옮겨 본다.
     7월 7일 남북 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읽으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통일의 새날이 동터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셨겠지요. 그날을 향한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아직도 수난의 역정이지마는요. 그런데 그 소중한 문장 속에도 일본말의 공해가 들어 있어서 안타까우셨지요.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 이라니, “한 조국” “한 민족”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조국”과 “민족”도 하나라는 뜻도 되지마는 “같은 조국” “같은 민족”이라는 뜻까지 되는 건데 말입니다. 북쪽의 말에까지 남아 있는 일본말 공해를 씻는 작업도 이 선생님 두 어깨에 짊어지워 있지요.
     이래서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외국말과 외국말법에서 벗어나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다. 민주고 통일이고 그것은 언제고 이뤄질 것이다. 그것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할 나위도 없지만, 3년 뒤에 이뤄질 것이 20년 뒤에 이뤄진다고 해서 그 민주와 통일의 바탕이 아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이 아주 변질되면 그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잘못 병들어 굳어진 말은 정치로도 바로잡지 못하고 혁명도 할 수 없다. 그것으로 우리는 끝장이다. 또 이 땅의 민주주의는 남의 말 남의 글로써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써 창조하고 우리말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문 목사님은 북쪽의 말까지 깨끗이 하는 일을 부탁하셨지만, 그런 큰일을 어떻게 나같이 무능한 사람이 감당하겠는가? 내 생각은 문 목사님께서 이제부터 우리 말 살리는 일을 좀 해주셨으면 하고 바라는데 좁은 소견일까?
     교회에 찾아온 할머니들한테서 우리말을 배우셨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참으로 귀한 가르침을 주시는 재미있는 말씀이다. 사실은 너도 어린아이들의 말과 글에서 우리말의 순수함을 배웠다. 그래서 어른들이 쓰는 글과 말이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깨들음을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을 내게 되었다. 말에 관한 연구를 전문으로 한 바가 없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이 방면의 연구를 할 형편은 못 되고, 내가 맡은 또 다른 분야의 일을 해야 하겠기에 이 책은 단지 우리말에 관한 매우 급하고 큰 문제 거리를 내 놓았다는 정도로 만족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수많은 말들에 대한 내 진단은 말하자면 면허증도 없는 돌팔이 의사가 제멋대로 내린 진단이 되겠지만, 적어도 말에 대한 것이라면 나같이 무식한 사람의 소견도 한번쯤 귀담아 듣는 것이 유익하리라. 산의 모양도 그 산을 타고 다니기만 하는 사람보다 산 밖에 나와 멀리서 바라볼 때 비로소 한 눈에 들어온다. 사람 몸에 든 병의 진단과 삶을 나타내는 말의 진단은 이래서 다르다고 본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여기 적어 놓은 모든 말에 대한 내 소견이 진정 올바른 것인가 판단해 주기 바란다. 모든 의견이 다 정당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물론 없다. 그러나 우리 말에 관한 주장의 기본 방향과 거듭 힘들여 말해 놓은 많은 말들에 대한 의견에는 그 어떤 사람도 이를 전면으로 거부할 수는 없을 터이고 그런 문제를 회피할 수도 없다고 본다. 다만 워낙 많은 문제를 들어 놓은지라 잘못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부디 그런 점을 지적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이 책에서 언급하지 못한 또 다른 많은 잘못된 말들이 있을 터인데, 이런 말들을 살펴서 바로잡는 일을 해 줄 분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머리말이 길어졌지만 또 한 가지를 보태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남의 글을 이렇게 꼬집어 잘못을 들춰내는 사람은 얼마나 버젓한 글을 쓸까 하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나도 글을 너무 잘못 써 왔고, 지금도 잘못 쓰고 있다. 글을 써 놓고는 언제나 『쉬운 말 사전』을 옆에 두고 글이 쉽게 읽히도록 고치고 다듬지만 그래도 수십 년 동안 길이 든 글장이의 못된 버릇이 자꾸 나와 어렵게 쓰고 잘못 쓰고 한다. 어찌 나뿐이겠나? 이 나라에서는 아주 깨끗한 우리말로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만큼 우리는 말과 글에서도 봉건과 일제와 분단의 세 겹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모두가 운명처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런데 하고 잘못 쓰는 것을 그대로 보아 줄 것이 아리나 기회 있는 대로 서로 잘못을 알리고 충고하고, 그렇게 충고하면 또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해야 글이 바로잡히고 말이 살아날 것이다.
     몇 해 뒤에 나오는 온전한 책보다도, 흠이 있어도 좋으니 지금 당장 이런 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서두르는 가운데, 교정을 보는 일에서 놀랄 만큼 꼼꼼하게 살펴 허술한 점과 잘못된 점을 집어내 주신 편집부 여러분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이 이만한 모양을 갖출 수 없었을 것임을 특히 적어 두어 그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데 참고할 일을 몇 가지 들어 놓는다.
     ① 보기로 든 글이 나온 자료의 표시는 그 보기 글마다 끝에 묶음표로 나타내었다. 이 자료들은 내가 주로 보는 신문이나 인쇄물들,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그래서 가령 신문으로 말하면 『한겨레신문』이 가장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한겨레신문』이 우리나라 신문 가운데서 문장이 가장 많이 잘못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이 가장 적은 신문이다.
     ② 자료를 나타낸 말에서 일간 신문은 ‘신문’이나 ‘일보’란 글자를 빼고 적었다. ‘제목’이라고 쓴 것은 신문기사의 제목이거나 어떤 글의 제목을 뜻한다.
     ③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는 글을 보기로 든 경우에도 글쓴이의 이름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밝히지 않았다.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의 글이면 그 신문의 사설일 수도 있고, 보통의 기사일 수도 있고, 이름이 적힌 기사일 수도 있고, ‘칼럼’일 수도 있고, 독자의 글일 수도 있다.
     ④ 보기 글에서 원문에 한문글자가 섞여 나올 경우에는 한문글자 그래도 보였다.
     ⑤ 말이 잘못 쓰이는 보기를 어떤 말에서는 한두 가지를 들고, 어떤 말은 수십 가지를 들었는데, 많이 든 것은 그런 말이 그만큼 널리 잘못 쓰이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제2장 우리 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
    1. 우리말을 파괴하는 일본 말글
     일본의 말글을 지난 80년 동안 우리의 글과 말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우리말, 우리글은 일본 말글을 따라 끊임없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 당신같이 일본글 읽어서 공부한 늙은이들이야 그렇지만 우린 일본말 같은 것 한 마디도 모른다”고 하겠지. 그러나 일본말의 영향을 받는 것이 어디 일본말을 직접 배워서만 받는가? 벌써 80년 전, 100년 전에 이 땅에 나서 일본말을 배우고 일본글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하여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저도 모르게 일본말법을 따랐던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안 받은 아버지가 없을 터이고, 그 할아버지보다 더 철저하게 일본말 일본글을 배운 아버지 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라난 아들이 없을 터이다. 더구나 지금은 일본책들을 마구잡이로 번역해서 우리말을 비뚤어지게 해 놓는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시급히 이 사실을 깨달아 일본말의 해독을 뿌리 뽑고 씻어 내지 않으면 멀지 않아 우리 겨레의 말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것이 확실하다. 일제시대에는 포악한 제국주의가 강요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요즘은 우리가 즐겨서 일본말을 따르고 흉내내는 꼴이 되었으니 이것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일본글을 제대로 큰 잘못 없이 번역해 놓은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일본글을 우리 글로 올바르게 번역하는 일은 일본글의 뜻을 틀리지 않게 우리말로 나타내고, 그리고 그렇게 옮겨 놓은 글이 우리말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번역문장이 뜻도 틀리고, 우리말은 아주 엉망인 경우가 많다. 지난날 36년 동안 온 나라 사람들이 일본말을 배우고 쓰다시피 했는데, 이건 어찌된 셈인가? 그 가장 큰 까닭은 일본의 말법과 우리 말법이 비슷해서 글을 따라 차례로 낱말만 우리말로 바꿔 놓으면 뜻이 통한다고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한자말을 쓰기 때문이 그 한자말을 그대로 적어 놓으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잘못되었다. 아무리 말법이 비슷하다고 해도 일본말은 일본말이지 우리말은 아니다. 말법이 비슷해서 그래도 직역해 놓아도 대강의 뜻은 짐작할 수 있다는, 게으르고 성의 없고 책임감 없는 태도가 화를 불러일으킨다. 일본글의 본뜻이 잘못 옮겨지는 것이야 우리로선 그 잘못이 거기에 그친다고 하겠지만, 우리말이 일본글을 따라 괴상하게 씌어지는 것은 예사일이 아니다. 한자말도 일본인들은 한문글자로 적어 놓고는 자기 나라 말로 읽는 것이 많다. 그것을 우리는 모조리 그대로 한자음으로 읽도록 옮겨 놓는다. 거기에다 한자말에 중독이 된 우리들은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 글자 ‘가나’로 적어 놓은 말까지 닥치는 대로 한자말로 번역한다. 이래서 일본글 번역한 책을 보면 온통 한자말 투성이가 되어 있다.
     일본말과 우리말의 짜임에서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우리말의 토 ‘의’와 일본말의 토 ‘の’가 꼭 같아 보이면서도 크게 달리 쓰는 점과, 움직씨의 입음꼴을 달리 쓰는 점이다. 문장에 자주 나오는 이 두 가지만을 잘못 쓴다고 해도 우리의 말과 글은 아주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본다. 어디 또 이것뿐인가? (p.85~p.86)